[현장르포] 지갑 열 수 없는 중국인 관광객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7월31일 오후 3시. 연평균 210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동대문시장.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에도 동대문 쇼핑몰에는 사람들로 붐볐다. 상품 가격을 확인하고 계산기를 들고 흥정하는 모습에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가이드와 약속한 시간이 30여분 밖에 남지 않은 위이지아(余亦佳, 광둥성 선전시)씨의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진다. 물건 좋고 가격도 싸다는 동대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지 않고 귀국한다면 여간 손해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처음 한국을 찾은 위씨는 하지만 쇼핑 첫날부터 기분이 상했다. "물건을 제대로 만져보지도 못했는데 계산기부터 들이대는데다 말이 통해야 쇼핑을 하죠..." 그는 옆 매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3시 20분. 한 디자이너 매장에서 재킷을 입어보던 싱가포르 여성 관광객이 슬며시 재킷을 벗고 나온다. "점원 눈치가…. 다른 손님이 들어오니까 태도가 삭 바뀌는데 여기서 사지 않아도 그만이에요" 라며 그는 얼굴을 붉혔다. 다른 손님은 바로 일본 관광객이었다.
#3시 45분. 쇼핑을 마친 관광객 30명이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다음 목적지를 향해 버스에 오를 준비를 한다. 고작 7명 가량의 관광객 손에 쇼핑백이 들려 있다. 그들의 쇼핑백 안에는 중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에게 선물할 기념품과 여행 동안 쓰고 다닐 모자 정도였다.
쉬하오춘(徐昊存, 광둥성 선전시)씨는 "동대문 쇼핑가에서 겨우 기념품 하나 건졌다"며 씁쓸해 했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나 그들에게 물건을 팔지 못한 쇼핑몰 상인들이나 허탈한 마음은 매 한가지인 듯했다.
◆“둬사오쳰(얼마에요)?” "어...."
기자가 동대문에 있는 세 개의 쇼핑몰을 찾은 지난달 31일 중화권 관광객들은 가격만 확인하며 매장을 둘러보기만 할 뿐 점원과 직접 흥정하거나 물건을 구입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을 찾아오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찬밥' 취급을 받으면서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시선도 냉소적으로 바뀌고 있다. 한국인들이 그들을 반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디자이너 의류 매장의 한국인 점원은 "물건이 비싸서인지, 일본이나 다른 나라 관광객들에 비해 구입하지도 않고 만져보기만 해 별로 달갑진 않다"고 말했다.
광동이나 홍콩 등지에서 온 중국인 관광객을 전담한다는 왕모씨는(여, 화교) "손님들이 모르는 것 같지만 다 느끼고 있다"면서 "물건을 만지지 말고 눈으로 확인한 뒤 치수나 크기를 확인하고 구입하는 쇼핑 순서를 잊지말라고 버스에서 미리 알려준다"고 말했다.
왕씨는 "버스에서 사전에 안내를 하는 이유는 과거 미리 공지를 하지 않아 상인들의 태도에 기분 상한 손님들이 심한 불만을 제기해 난감했던 경험 때문"이라며 "매장에 들어가더라도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는 점원들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불쾌해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현재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들의 소비 수준이나 관광객 수를 염두에 뒀을 때 상인들의 이런 반응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시가 여론조사기관인 닐슨컴퍼니코리아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초 서울을 방문한 외국인 개별관광객 가운데 중국인의 지출액은 평균 2203달러로 전체 평균보다 32%나 많다.
'2010-2012 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지난달 21일부터 열린 '서울 그랜드 세일' 행사의 주요 타깃도 중국인이다.
그럼에도 중국계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찾는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쇼핑 중심가 동대문시장의 관광안내소에는 영어와 일본어 안내서만 구비돼 있을 뿐 중국어로 된 안내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비자발급 완화 등 중국인 관광객 유치 총력
정부는 지난 1일부터 중국인에 대한 복수비자 발급을 크게 완화하고 2회 방문이 가능한 '더블비자‘제도도 새롭게 도입하는 등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우수 대학 재학생에게 한국 비자를 발급하는 등 중국인 관광객 유치 활성화를 위한 새로운 비자제도 도입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세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지갑을 열기 위한 묘안도 짜내고 있다.
동대문시장에 위치한 쇼핑몰 두타의 경우 사후 면제제도를 통해 외국인 고객이 구입한 상품에 대해 4~9% 가량 세금을 환급해 주고 있다.
택스프리코리아(TAX FREE KOREA) 정지연씨는 "제도 시행 6개월 만에 매출이 두 배 가량 증가했고 시행 1년인 현재 반응이 뜨겁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일본이 관광객에 비해 택스 리펀드 영수증을 끊어 환급 받는 중국인 관광객이 아직은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반면 미국이 명품 할인율을 대폭 높여 중국인 손님맞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두바이는 항공권 원가까지 낮춰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여행 패키지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와 쇼핑업체들의 중국인 관광객 유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소가 결여된 한국 관광업계가 과연 중국인 '큰손'들의 지속적 한국행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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