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입국 심사'..탈레반의심 외국인 17회 통과

2010-02-19 17:22

이슬람 무장단체 요원으로 의심되는 외국인이 남의 여권으로 국내외를 수시로 드나든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아프가니스탄의 무장 이슬람 정치단체인 탈레반 소속으로 의심되는 파키스탄인 A(31)씨를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03년 8월 다른 파키스탄인의 여권을 이용해 입국해 국내의 한 이슬람사원에서 성직자로 활동하면서 2008년 7월까지 17차례에 걸쳐 불법으로 입출국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결과 A씨는 2001년 9월 1년짜리 단기상용비자로 처음 입국했으며, 이듬해 비자가 만료됐음에도 불법체류를 이어가다 2003년 6월 자진 신고하고 파키스탄으로 강제 출국당한 바 있다.

이후 A씨는 파키스탄에서 자신의 형(36) 신상정보에 자신의 사진을 넣은 여권을 정식으로 발급받아 2개월 뒤 다시 입국했다.

경찰은 지난해 파키스탄인들이 대거 연루된 중장비 밀수사건을 수사하던 중 다수의 A씨 주변인들로부터 "A씨가 탈레반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진술을 받고서 내사를 시작했다.

경찰은 2003년 강제 출국을 당할 때 사진과 현재 여권 사진을 국립과학연구소에 보내 정밀감식을 의뢰한 결과 두 사진 속 인물이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A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A씨 주변인들로부터 "A씨가 탈레반 지도자 잘랄루딘 하카니 등에게서 한국의 미군기지 정보를 수집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고 다녔다", "A씨가 탈레반임을 과시하며 파키스탄 내 가족을 죽이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등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A씨가 실제로 국내 정보를 입수해 탈레반에 넘겨줬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의 주장에 신빙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보고 수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탈레반으로 의심만 하는 단계다. 아직 뚜렷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지만, 국가 보안 문제여서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인을 상대로 추가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경찰 관계자는 "2001년 9.11테러 이후 공항 등에서 외국인 출입국을 엄격하게 관리했는데 A씨가 남의 여권으로 수시로 입국하면서 적발되지 않은 것은 출입국관리의 허점을 보여준 사례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관계자는 "해당 여권이 파키스탄에서 정식으로 발급된데다 위조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입국심사 과정에서 적발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든다"고 해명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