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모르쇠'로 뒷짐 도요타의 추락
"큰 일 났다. 렉서스를 운전하고 있는데 가속페달이 떨어지지 않는다. 차가 멈추지 않는다. 시속 125마일(약 200km)로 달리고 있다. 브레이크도 소용없다. 꽉 잡아! 잠깐… 잠깐… 제발… 제발…"
지난해 8월 28일 저녁.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 125번 고속도로에서 긴박한 구조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통화는 '쾅'하는 충돌음과 함께 끊겼다.
유튜브에 공개된 사고현장 동영상 |
사고가 난 '렉서스ES350'은 마주오던 차량과 충돌한 뒤 화염에 휩싸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사고 차량에는 고속도로 순찰대원인 마크 세일러와 그의 아내와 딸, 처남이 함께 타고 있었다.
지난달 27일 사고 당시 911 통화기록과 사고현장이 담긴 동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됐고 2일 현재 11만4649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도요타가 이같은 안전사고들이 수천건 접수됐음에도 축소, 은폐로 일관하다 결국 오늘날 대규모 리콜 사태를 초래하게 됐다고 비판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도요타가 2008년 겨울 영국에서 가속페달 결함 문제가 제기돼 해당 부품을 수리했다는 도요타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도쿄신문은 도요타가 2007년 고객으로부터 가속페달 결함 문제를 접수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사태 진정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도요타는 이날 처음으로 공식회견을 갖고 고객에게 사죄했다. 도요타 품질보증 담당 임원인 사사키 신이치 부사장은 "도요타 고객들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진심으로 사죄한다"며 "고객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도 도요타 파문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한국도요타는 국내에서 판매된 도요타 차량은 문제가 된 가속페달이 사용되지 않아 안전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리콜문의가 쇄도하자 이 회사는 이날 미국에서 수입하거나 다른 경로로 판매된 문제 차종을 무상으로 수리해 줄 방침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국내에 들어온 문제 차량이 2000여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도요타의 늑장대처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면서 북미에서는 도요타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도요타 파문은 상당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세계 굴지의 자동차 공룡들을 제압하고 세계 최대 자동차기업 왕좌에 오른 도요타의 위상이 급추락하게 된 원인은 뭘까.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의 수석 편집자인 알렉스 테일러는 이날 포춘에 기고한 글에서 도요타에게 "거울을 보라"고 일갈했다. 덩치를 키우느라 본질을 잊었다는 지적이다.
테일러는 가속페달의 공급 방식과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구조, 무리한 비용절감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았다.
도요타는 일본 덴소와 미국 CTS로부터 가속페달을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양사가 서로 다른 메카니즘을 적용하고 있어 호환이 불가능하다. 도요타는 1997년 브레이크 공급업체의 화재를 계기로 동일한 부품의 공급처를 복수로 두고 있지만 가속페달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효율성만 추구한 결과다.
그는 또 도요타가 미국법인의 판매와 생산, 엔지니어링 부문을 통합했다면 이번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비대한 조직은 가속페달 결함문제를 인지하고도 늑장대응하는 결과를 낳았다. 판매부진을 상쇄하기 위해 강도높은 비용절감에 나선 도요타는 지난해 말 부품공급업체에 향후 3년간 비용을 30% 줄이라고 엄포놓기도 했다.
테일러는 "도요타가 이번 사태를 경영구조를 현대화하고 '품질 도요타'의 본질을 되찾는 계기로 삼는다면 사태 수습에 드는 비용은 결코 아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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