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권한 강화…관치금융 물밑작업?
은행연합회는 25일 은행지주사와 은행의 사외이사 권한을 강화하고 임기를 제한하는 내용의 사외이사 모범규준을 발표했다. 사진은 노태식 은행연합회 부회장(오른쪽)과 유윤상 은행연합회 경영지원부 부장(가운데), 이광진 은행연합회 변호사가 관련 내용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은행지주사 및 은행의 최고경영자(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임기 제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은행 등 사외이사 모범규준'이 25일 발표됐다.
모범규준 도입으로 그동안 '거수기' 역할만 하던 사외이사들의 권한이 대폭 강화되고 경영진에 대한 견제기능이 강화될 전망이다.
하지만 사외이사에게 경영에 대한 책임 부여가 결여되는 등 당초 시장의 예상에 크게 못 미치며, 관치금융의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사외이사 권한 대폭 강화
은행연합회가 사외이사 모범규준을 새로 도입하면서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은행지주사 및 은행의 CEO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한 것이 가장 크다. 그동안 사외이사 선출은 CEO와의 학연·지연 등에 얽힌 경우가 많았다.
금융연구원이 전ㆍ현직 사외이사들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36명 중 자신을 사외이사로 추천한 인물로 경영진을 꼽은 사람이 36.1%에 달했다. 정부 및 금융당국 인사 추천은 경영진 추천의 절반에 불과한 19.4%.
또 새 규준은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을 2분의 1 이상으로 높여 경영진의 경영 독단을 제한했다.
이와 함께 사외이사의 임기 및 총재임기간을 2년·5년으로 제한하고 전체 사외이사의 5분의 1을 매년 교체하도록 했다. 보상평가위원회 소속 사외이사도 2년 초과 재임을 제한했다.
모범규준의 임기 및 겸직 제한 조치 등으로 현재 KB·우리·신한·하나 등 4개 금융지주사와 4대 은행의 사외이사 62명 중 10~20명 가량이 오는 3월 주총 때 물갈이 될 전망이다.
◆ 선임과정 투명성 및 책임경영 강화는 '미진'
하지만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대한 세부 공시와 사외이사의 경영책임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당초 전문가들은 사외이사 선발과정의 후보등록, 심사 등의 과정을 모두 공시해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금융지주사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사외이사의 권한이 강화된 만큼 추천 및 선임 과정을 투명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이사회 결정이 회사에 손실을 끼쳤을 경우 패널티를 부여해 책임경영을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에도 부응하지 못했다. 이사회 결정 사안으로 금융기관이 손실을 입더라도 사외이사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않는 관행이 이어지게 됐다.
우리금융 고위 관계자는 "상근 경영진의 책임경영을 위해 각 회사들은 성과급 삭감 등의 징계 조항을 마련해 두고 있다"며 "하지만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사외이사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부여되지 않아 자칫 모럴해저드로 이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 '관치금융' 부활? '전관예우' 목적?
사외이사 개편은 금융 관료들의 '전관예우'와 '관치금융'이 목적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다.
'KB사태'처럼 금융기관 수뇌부가 물갈이 될 경우 결국 경제관료 출신인 '모피아'들에게 자리가 돌아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사외이사를 모피아로 교체해 금융권을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려는 정치적 목적도 제도 개편의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전용식 우리금융 경영연구소 연구위원도 "공무원들이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나설 경우 사외이사제 개편은 정부 관료의 자리만들기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라응찬 신한지주 회장·김승유 하나지주 회장 등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CEO들은 오는 3월 이사회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 의장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겸직 사실을 공시하고 사외이사의 대표인 선임 사외이사를 둬야 한다.
하나금융 김 회장, 신한금융 라 회장 등의 경우는 각 지주사 회장직을 10년 이상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장기 집권 구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와 연합회 측은 모범규준 도입에 정부의 입김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노태식 은행연합회 부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외이사 개편과 관련해 은행법·회사법 등 연결된 법과 조항이 많아 관계 당국과 협의 및 협조를 구했지만 당국의 의지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