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수정안) 지역 균형발전 행정도시 건설…역사속으로

2010-01-11 11:24

 2002년 노무현 신행정도시 공약…헌재 위헌 딛고 행복도시로
정운찬 세종시 수정 논란 촉발…부처 이전 백지화

 

노무현정부가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세종시에 추진했던 행정복합도시 건설이 사실상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명박정부가 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면서 현행 부서 이전을 전면백지화하면서다.

지난 2002년 9월30일 민주당 대선 후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충남권에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어 이듬해 12월 참여정부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을 마련했고,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한나라당과의 조율 끝에 2003년 12월29일 압도적 찬성으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2004년 10월21일 헌법재판소는 학계 등이 특별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데 대해 “수도 서울은 관습헌법”이라는 논리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신행정수도 건설이 최초로 좌절된 시점이었다.

이런 헌재 판결에 강력 반발한 노무현 정부는 곧바로 후속 조치 마련에 착수해 이듬해인 2005년 ‘16부4처3청’을 충남 연기·공주로 이전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했다.

논란 끝에 박근혜 당시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여당과의 협상 끝에 ‘12부4처2청’을 연기·공주에 이전하는 데 합의하고 같은해 3월3일 국회에서 처리했다.

이후 행정도시 건설은 급물살을 탔다. 이해 5월 예정지역 및 주변지역을 지정한데 이어 10월 49개 중앙행정기관의 이전계획을 확정하는 등 도시개념 국제공모 등을 거쳤다. 2006년 1월 행정도시건설청을 개청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국제공모를 통해 발굴한 환상형 도시구조를 바탕으로 도시건설 마스터플랜인 기본-개발-실시계획을 수립, 도시의 밑그림을 확정한 뒤 2007년 7월 역사적인 기공식을 열었다. 연기·공주 일대 297㎢ 부지에 2030년까지 중앙행정기능을 중심으로 한 자족도시를 건설하는 대역사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에서 행정부처 이전을 반대하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세종시의 운명이 꼬이기 시작했다.

현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을 중심으로 세종시 수정안 검토 작업이 초반부터 은밀하게 진행됐다는 후문이다.

세종시 수정 총대는 정운찬 국무총리가 맸다. 정 총리는 지난해 9월3일 총리 내정 소감을 밝히면서 세종시 수정 의사를 밝혔다. 그는 취임 이후 보다 적극적인 수정 행보에 나섰다. 공주가 고향인 정 총리는 충청권을 향해 고향과 나라발전을 위해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학자적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지난해 충청권을 4번이나 방문한 자리에서도 교육·과학 중심의 경제도시로 건설돼야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 진다며 수정 당위성을 설파했다. 행정도시건설청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자신이 탄 버스가 계란세례로 얼룩지는 현장을 목도하기도 했다.

논란이 거듭되자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4일 정 총리로부터 주례보고를 받던 자리에서 세종시 원안을 발전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하고 늦어도 올해 1월까지는 수정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11월27일 공중파 생방송을 통해 방영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이 대통령은 과거 표를 의식해 자신의 진의를 숨긴 점을 사과했고 수정안의 역사적 당위성과 청사진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다.

앞서 정부가 수정안 마련을 위해 출범시킨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는 이 대통령의 대국민 대화를 기점으로 수정안 마련에 더욱 속도를 냈다.

세종시의 성격을 행정도시에서 교육과학 중심 경제도시로 바꾸고 기업, 연구기관, 학교 유치를 위한 각종 유인책을 마련, 자족기능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두달여의 준비 끝에 정부는 수정시 수정안을 내놨고, 또 한번의 반전이 이뤄지지 않는 한 행정도시는 역사속에 묻히게 됐다.

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songhdd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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