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韓日間 ‘우호적인 분위기’ 발전시켜야

2009-12-21 17:50

일본 내각부가 12일 발표한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친근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63.1%로 나타났다. 일한관계가 ‘양호하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66.5%였다. 전년 조사에 비해 각각 6%, 17%씩 높아졌다. 1978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모두 최고치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외무성 담당자는 “양국의 정치문제가 안정되고 민간교류 확대가 영향을 미쳤지 않겠는가.”고 분석했다. 이런 현상은 ‘한류 붐’ 영향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 시청과 한국방문 등 한국 문화를 접한 일본인들의 증가와, 하토야마(鳩山)정부 출범이후 양국의 우호적인 분위기형성이 주요인으로 생각된다.

일본의 현 정부 여당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 민주당 간사장은 12일, 초청한 국민대학교 강연에서 “현대사 중에 불행한 시대가 있었다. 일본 일본국민으로서 여러분에게 사죄해야할 역사적인 사실이 있다”고 양국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오자와 간사장은 민주당내에서 자기파 소속의원이 가장 많은 일본 정계 최대실력자로 10일 중국방문에는 당 소속의원 143명에 재계인사 등을 포함해 600여명이 동행하기도 했다. 하토야먀 총리는 그에게 영주 외국인(재일동포가 대부분) 지방 참정권 법안문제를 일임해 놓은 상태이고, 그는 적극 지지하는 입장이다. 그러한 영향력을 가진 오자와의 역사문제에 대한 사죄표명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오자와 간사장은 만찬을 겸한 회담에서 한일강제병합 100년인 내년을 ‘우호 100년의 출발점’이 되도록 인적 문화교류 등을 추진해 나가자고 했다. 이날 두 사람만의 회담내용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국 측이 “여러 현안에 대해 최고 실력자인 오자와씨의 견해를 듣고 싶다”고 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재일동포의 지방선거권 부여법안도 논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사회에서 재일동포들은 직간접적으로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지방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일본정치인들과 일본인들의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 그들도 일본 국민과 똑같이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고 한 표 한 표는 곧 힘이기 때문이다.

재일동포들의 지방선거권 문제는 이전부터 논의되어왔지만 자민당정권하에서 실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지금도 보수 우익들의 거센 반발과 언론의 지지는 높지 않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지지의사를 밝히는 정치인들과 그런 정당의 정부이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이번 하토야마정권에서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다시 우익성향이 강한 자민당 정권이 출범하게 되면 이 문제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여당인 민주당과 연립정당이 법안제출과 가결에 좋은 여건을 만드는 데는 한국도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돼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역사교과서문제나 독도문제 등이 튀어나오더라도 과격한 반일집회 등은 지양해야 한다.

일본의 국기를 불태우고 그 나라 국가수반을 형상화한 인형을 찢고 부시고 화형식 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그 나라 국민들이 지켜볼 때,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을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일본의 과거 역사를 반성하는 일본국민들까지 반대편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런 과격집회는 또한 보수 우익들의 응집력을 강화시켜줄 뿐이었다. 일본 우익들은 한국의 반일 과격시위에 오히려 쾌재를 외친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 외교적으로 주장할 것은 분명하게 주장하고 요구하되 이제는 성숙한 집회를 해야 한다. 이제까지와 같은 과격한 대일집회는 분풀이식의 카타르시스는 될지언정 문제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국제적으로도 국가 이미지만 추락시킬 뿐이다.

오래전 김태지 주일 대사가 독도영유권문제와 관련해 이런 취지의 발언을 했다. “자신의 호주머니 안에 있는 자기의 물건을 꺼내 굳이 이건 내 것이라고 주장할 필요가 있을까.”라고 말했다.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독도(일본명,다케시마) 존재 자체를 알고 있는 일본 국민들은 많지 않았다. 한국의 초등학생들도 다 알고 있는 독도를 그들은 거의 모르고 있었는데, 독도문제에서 한국의 과격한 반일시위가 TV와 사진으로 자주 일본에 여과 없이 보도되면서 일본의 우익들을 자극하고, 우익들이 선동하면서 일본 국내에서도 이슈화가 되었다. 지금은 많은 일본인들이 독도(다케시마)를 잘 알고 있다. 과격한 시위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 결과이다. 성숙한 대일 시위문화가 정착돼야할 이유이며, 오랜만에 찾아온 한일간의 우호 무드를 발전시켜 나가야 하겠다.

박승민 편집위원겸 文藝春秋 서울특파원 yous111@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