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은 독이 든 성배?
금융위기 여파로 자금난에 시달렸던 미국 기업들이 미 정부의 구제금융 지원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최고경영자(CEO)들은 만만찮은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새로 영입된 이사진의 간섭과 정부의 급여제한 조치 등으로 경영일선에서 밀려나는 CEO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 프리츠 헨더슨 제너럴모터스(GM) CEO가 이사회와의 불협화음으로 전날 사임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후임자는 자동차업계가 아닌 이종업계에서 영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외부 인사의 경우 정부의 보수규정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헨더슨 전 CEO는 지난 10월 연봉 25%를 삭감당했다. 물론 그의 연봉은 주식과 스톡옵션 등을 포함하면 540만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지난달 에드워드 휘태커 GM 회장은 이같은 연봉 수준으로는 최고 수준의 인사를 영입하기 힘들다며 구제금융 지원 기업에 대한 미 정부의 보수 통제 방침에 불만을 드러냈다. 당시 그는 급여제한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일부 수정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FT는 미 정부로부터 대규모 구제금융을 받은 기업의 CEO는 살인적인 업무 강도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 기업 회생을 요구하는 안팎의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영입한 이사들의 간섭도 견뎌내야 한다.
상황이 이렇자 구제금융을 지원받은 기업 CEO들의 사임도 잇따르고 있다.
2일(현지시간) CNN머니에 따르면 GM과 크라이슬러, GMAC, 크라이슬러파이낸셜, AIG,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패니메이, 프레디맥 등 9개 기업은 지난 15개월간 모두 20명의 CEO를 갈아치웠다.
특히 GM, 패니메이, 프레디맥, AIG 등 4곳은 정부 지원을 받은 이후 한번 이상 CEO를 교체했다.
최근 GM의 금융자회사였던 GMAC는 알바로 데 몰리나 CEO를 19개월만에 전격 해임했다. 후임자로는 이사회 멤버였던 마이클 카펜터를 영입했다. 지난 10월 BoA CEO로 있던 케네스 루이스 역시 후임자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격 해임됐다.
CNN머니는 불안정한 경제상황 속에서 정부 내정으로 선출된 이사들과의 마찰이 잦은 CEO 교체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워렌 닐 미 테네시대 기업지배구조연구소 소장은 "CEO와 이사회가 끈끈한 상호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을 찾기 힘들다"며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위기에 처했던 기업일 수록 CEO와 이사회가 서로 지지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는 모멘텀이 생긴다"고 말했다.
일각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임원들을 방출하는 것이 오히려 기업회생에 도움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하는 사무엘앤로니헤이맨센터의 에릭 팬 소장은 "지금은 이사회가 나설 때"라며 "정부가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 주체가 아닌 이상 기업내부 권력이 뒤바뀌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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