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금융사의 실종된 '사회적 책임감'

2009-10-09 17:07

"우리 은행가들은 돈을 벌 것 같을 때는 자유 시장을 지지하고, 돈을 잃을 것 같을 때는 국가를 믿는다"

1985년 5월 24일, 월스트리트 저널에 실린 한 미국 은행가의 말이다.

지난해 9월 리만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회사들을 덥쳤다.

정부는 늪에 빠진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구조조정기금', '채권시장안정펀드'를 비롯한 각종 동아줄을 던져줬다.

이 동아줄을 잡은 은행들은 금융위기에서 어느 정도 탈피했고, 조금씩 정상적인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정부의 도움을 받은 은행들은 최근 다시 자유시장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금융위기가 잦아들면서 슬슬 돈을 벌 타이밍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기준금리가 여전히 2.00%에 머물고 있음에도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상승을 이유로 예금 및 대출 금리를 속속 올리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며 지난 1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도 6개월 만에 2%포인트대로 올라섰다.

일부 시중은행장들은 3분기 실적발표가 1달 가까이 남은 상황서 벌써부터 '3분기 실적은 전망을 크게 웃돌 것'이라며 자랑하고 나섰다.

하지만 은행의 주요 기능은 자금중개기능은 여전히 둔화된 모습이다.


7월 말 현재 예금은행의 산업여신은 총 950조7087억원으로 전월(947조2079억원) 대비 3조5000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올 1월부터 매월 5조~8조원 가량 증가하던 산업대출은 6월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또 최근 논란이 한창인 금융회사 직원들의 임금 5% 삭감 및 연월차 의무 사용 등에서도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임금 삭감안은 정부가 타 업종에 비해 2~3배나 많은 연봉을 받는 은행에 고통분담 및 사회환원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국책은행 3곳과 금융감독원·은행연합회·우리은행 이외에는 모두 정부의 요청을 외면하고 있다.

경제 회복기에 보이는 은행들의 모습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를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은행들이 붙잡았던 동아줄은 모두 국민의 혈세로 만든 것이다. 은행들이 동아줄 사용에 따른 책임감을 느낀다면 기업 자금지원 및 고통분담에 소극적으로 나서서는 안 된다. 혹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적어도 동아줄을 사용한 이용료 정도는 지불해야 하지 않을까.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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