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백의 여의도 인사이드]국감인가 아님 '기업감사'인가
2010-02-17 09:05
국정감사를 앞두고 여야 의원들이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행태가 올해도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상대 정파를 헐뜯기 위한 증인채택 요구를 남발하고 있으며, 기업인들을 무더기로 국감장에 세우려는 구태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정무위원회는 1일 간사회의에서 우리은행의 파생금융상품 투자 손실과 관련,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 홍대희 전 부행장 등을 국감 증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정무위는 지난해 국감에서도 유동성 위기와 키코(KIKO) 문제 관련, 황영기 전 회장 등 5개 시중은행장을 증인으로 부른 바 있다. 덤핑 판매 등을 캐겠다며 음료업체와 정유사, 자동차회사 등 민간기업인 41명을 불러 논란을 빚기도 했다.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가 채택한 증인 30명 중 9명은 IT업계 경영진이다. 이동통신 요금 인하문제와 관련해 KT, SK텔레콤, LG텔레콤 경영진이 증인에 포함됐다. 애플코리아 대표와 안철수연구소 사장은 각각 아이폰과 디도스 대책과 관련해 증인으로 신청됐다.
NHN과 다음커뮤니케이션 임원들은 중소인터넷업체 상생기금 관련법의 제정과 관련해 국감장에 나올 예정이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GS, 대림건설, 쌍용건설 대표이사가 산재다발 건설사라는 이유로 국감대에 오른다. 일부 의원들은 산재 사망사고가 많은 기업 6곳과 4대강 살리기 관련 건설사들을 모두 부를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식경제위원회에서는 기업형 슈퍼마켓(SSM) 관련, 홈플러스 등 유통회사 대표를 불렀고 쌍용차 법정관리인도 증인으로 채택했다.
국토해양위원회는 경부고속철도 TRS 특혜를 놓고 LG CNS 경영진을 부른 상태다. 그밖에 다른 상임위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국정감사는 헌법에 보장된 국회 고유 권한으로 필요한 경우 증인의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국회가 국정 전반에 걸쳐 국정감사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인을 마구잡이로 증인으로 부르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매년 증인 신청을 되풀이하는 것이 과연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국감은 어디까지나 생산적인 것이 돼야 한다. 정치적으로 한 건 올리겠다는 식의 폭로성 책임 추궁이나 증인을 불러다가 호통을 치는 식의 국감이 돼선 곤란하다.
무엇보다 기업인들이 증언대에 섰을 때 파장이 어떨지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과거 국감에서 자주 보아왔듯 채택된 증인에 대해 본질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안에 대해서까지 망신주기식 추궁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한 기업인 자신의 명예훼손, 기업 이미지 손상과 신뢰 하락은 세계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 나라 안팎으로 경제가 보통 어려운 상황이 아닌 만큼 여야는 이들을 국감장에 불러내는 데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추석 연휴를 지내면서 정치권은 민심을 알았을 것이다. '경제를 살리라'는 절박한 요구를 더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 무분별한 증인채택 요구를 거둬들이고, 정부 정책이 올바르게 수립·집행되는지를 살피고 대안을 제시할 준비를 해야 한다.
기업인에 대한 증인채택도 최소한으로 자제해 이들이 경제회생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여야 모두 입으로는 ‘정책국감’, ‘민생국감’을 외친다. 백 마디 말보다는 이런 행태부터 시정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아주경제= 서영백 기자 inch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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