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잡세어링 '임금 세어링'으로 전락?
금융권이 신입사원 임금 삭감 및 기존직원 임금 반납 등을 통해 막대한 규모의 일자리나누기(잡셰어링) 재원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신입 사원 채용에는 미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ㆍ외환ㆍ산업ㆍ기업ㆍ농협중앙회 등 8개 금융기관은 올 하반기 총 1635명의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 선발 인원 1284명에 비해 351(27.34%)명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에 비해 채용 규모가 증가한 것은 △신입사원 임금 5~20% 삭감 △행장을 비롯한 기존 임직원 임금 5~40% 반납 △연월차 사용을 통한 연월차 수당 적립 등의 조치 덕분이다. 또 작년 하반기에 비해 금융위기의 파고가 한 풀 꺾이는 등 경영 상황이 한결 나아진 점도 일조했다.
은행들은 잡셰어링 재원 마련을 위한 이 같은 조치들로 은행별로 적게는 40억원에서 많게는 8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모았다. 하지만 모금된 돈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을 신규 채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잡세어링이 임금만 삭감했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국민은행은 경영진 임금 10~30% 삭감, 부점장급 및 일반직원 임금 5% 반납, 전직원 연차휴가 10일 의무사용, 신입행원 초임 20% 삭감 등을 통해 총 840억원을 모았다. 하지만 국민은행이 지난해에 비해 늘린 대졸 신입사원 수는 90여명, 계약직 텔러 200명에 불과하다.
은행권의 군필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이 2500만~3200만원, 교육비가 최초 1년간 350만~450만원 수준이다. 이 점을 감안했을 때 국민은행이 올해 신입사원들에게 추가로 사용하는 비용은 31억원에 정도다.
신한은행 역시 신규 채용인력은 400명으로 전년 대비 290명 증가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대략 98억6000만원으로 신입사원 임금 20% 삭감 및 연월차 사용으로 마련된 재원 약 120억의 3분의 2 수준이다.
외환은행은 대졸 신입사원 연봉 20% 삭감하고, 상반기에 40~50대 직원 150명 정도를 명예퇴직시켰다. 퇴직한 직원들의 연간 임금과 신입사원 연봉 삭감분을 감안하면 외환은행은 200억원 가량의 잡셰어링 자금을 쌓았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외환은행이 늘린 신입사원 수는 30명에 불과하다.
상황은 국책은행들도 마찬가지.
기업은행은 신입행원을 뽑을 수 있는 재원이 총 48억원 늘었지만 11명을 늘리는데 그쳤다.
산업은행은 행장과 임원들의 임금을 40% 가량 반납하고 대졸 행원의 연봉을 20% 깎았음에도 오히려 신입채용 규모를 지난해에 비해 25명 줄였다.
또 올 상반기 하나은행(100명), 외환은행(100명)을 제외한 대부분 은행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고, 인턴제도만 운영한 탓에 상반기에 쌓은 재원은 대부분 행내에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고통분담 차원에서 시작된 잡셰어링 정책이 신규채용 확대보다는 임금삭감 효과만 낳은 것이다.
이에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마련한 재원은 청년인턴 채용 등에도 사용해 100% 정직원 고용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결국 잡셰어링이 근로자들의 임금을 깎기 위한 정책이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경제 국장은 "일자리 나누기 정책이 결국 근로자의 임금을 줄이는 수단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사내유보금을 사용하거나 순환직무 강화 등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 등의 실효성 있는 방법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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