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속’(通俗)이란 세상과 통하는 지름길이다
2009-08-11 14:25
심상훈의 Book&Talk
스타일/ 백영옥 著/ 예담
“멀쩡한 남자의 썰렁한 농담은 맹한 매력이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인생이란 언제 끝장날지 모르는 부도수표에 가깝다.”(81쪽)
그러니 어쩌랴. 이왕 사는 인생, 더러는 즐기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백영옥 작가의 ‘스타일’(예담)이 TV드라마로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책은 한국판 칙릿. 칙릿(chick+literature이란 젊은 여성을 겨냥하는 소설을 일컫는 신조어로 이를테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섹스 앤 더 시티’ 등의 영미권 소설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내 보기엔 사춘기에 접어든 딸과 대화의 물꼬를 트고 싶어 하는 부모가 읽어야 할 책으로 보인다. 이야기는 A라는 패션잡지에 근무하는 주인공 이서정 기자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 갈등 등이 재미나게 펼쳐진다. 화려한 패션 세계 뒤의 숨은 비루한 삶을 기막히게 잘 묘사했고 담아냈다. 술술 읽힌다. 그 이유는 간단한다. 소설의 허구가 상상에만 치우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프로필을 살펴보니 저자는 패션잡지에서 일했던 적 있다. 그러니 소설은 저자 자신의 경험에 힘입은 바 크고 또 육성이 공허하지 않고 또렷하게 감지된다.
주인공은 섭외가 어려운 스타 때문에 영화 촬영 현장을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기도 하고, 레스토랑을 취재하기 위해 주방에서 일주일이나 접시를 닦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심지어 편집장의 명령에 몸에 들어가지 않는 스키니 진을 입고 체험기를 써야 하는 내용도 나온다.
한마디로, 패션지 기자라는 직업 세계에서 일어나는 경쟁과 갈등, 사랑과 야망 등을 통해 자신의 스타일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돌아보게끔 만든다.
이뿐만 아니다. 책은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전문직 여성의 삶과 생활을 놀라운 필체로 잘 드러내주고 있다.
또한 ‘닥터 레스토랑’이라는 필명의 칼럼니스트를 찾아가는 과정과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반전의 재미를 선사한다.
남자보다 쇼핑이 좋은 여자, 샤넬 향수와 마놀로 블라닉 슈즈를 욕망하는 여자, 44사이즈를 갈구하는 55사이즈의 여자이자 패션잡지 8년차 여기자인 주인공 이서정의 좌충우돌하는 삶에서 왜 젊은 세대들이 명품을 소비하고 어떻게 패션, 섹스, 음식 등을 실제로 즐기는지 진정성을 파헤치고 있다는 점에서 책은 돋보인다.
주방은 언제나 까다로운 손님에 대비해야 한다(63쪽). 혹은 세상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늘 패키지로 묶여 다닌다(76)는 통찰력.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드라마의 통속성이 좋았다. ‘통속’(通俗)이란 세상과 통한다는 말 아닌가. 그 좋은 말을 사람들이 한껏 폄하해 쓰는 건 어쩐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19쪽)라는 대목에선 사춘기의 딸이 왜 그토록 TV드라마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그렇다. 딸은 지금 세상과 통하고자 책상이 아니라 TV 앞에서 그런 거다.
심상훈 북칼럼니스트(작은가게연구소장)ylmfa9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