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의 금융프리즘) 中企 구조조정과 동방삭
담하용이(談何容易). 무슨 일이든지 입으로 꺼내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쉽지 않으므로 쉽게 입을 열지 말라는 뜻이다.
담하용이의 유래는 이렇다. 중국 전한(前漢) 중엽 상시랑을 역임한 동방삭은 무제를 위한 직언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
민태성 금융부 차장 |
동방삭은 또 부국강병책을 건의했지만 무제가 듣지 않자 '비유선생론'이라는 풍자문을 올리며 간곡히 직언했다.
비유선생론에는 비유선생과 오왕이라는 가공의 인물이 등장한다. 능력있고 충정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비유선생은 오왕을 모신지 3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직언을 올리지 않았다. 어느날 오왕이 "뭔가 말을 해주시오"라고 부탁했지만 선생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직언하다 죽은 충신과 아부로 중용된 인물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입을 열기가 어찌 쉽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비유선생의 깊은 뜻을 헤아린 오왕이 감동하여 이후 선생의 직언을 받아들이고 오나라를 융성케했다는 것이 비유선생론의 내용이다.
담하용이가 주는 교훈은 신중한 발언과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책임질 수 있는 행동은 필수다.
금융당국이 기업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건설사와 주요 대기업그룹에 이어 이번에는 중소기업 113개에 대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단다.
113개 중기 중 C등급을 받은 77개에 대해서는 워크아웃이, D등급인 36개에 대해서는 퇴출이 진행된다.
금융감독원은 대대적인 중기 구조조정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장담했다.
개정 협약에 따라 은행간 협의를 없애 비용부담을 줄이는 등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은행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금감원은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 은행의 부실평가 책임에 대해서도 엄격히 문책하겠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금감원은 향후 은행 검사시 C나 D등급으로 분류하지 않은 업체가 부실화하면 해당 은행에 대해 여신취급과 심사 뿐 아니라 신용위험평가에 대해서도 부실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제도 개선과 부실평가 문책 등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기업 구조조정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은행권의 반응은 떨떠름하다. '내집 관리'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지원에 나설 여력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제시했지만 채찍이 먹힐지도 의문이다. 은행의 부실평가에 대한 문책의 기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효과적인 제재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금감원 제재심의실에 따르면 수개월 전 진행된 건설사와 대기업 그룹에 대한 구조조정 결정과 관련해서도 관련 부서로부터 통보받은 것이 아무것도 없단다.
은행 책임에 대한 부실 문책과 관련된 구체적인 양정 기준도 마련되지 않았단다.
자칫 말 뿐인 제재에 그치는 것은 물론 구조조정 자체가 흐지부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동방삭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한 때일 수도 있다. 한국의 동방삭은 어디에 있는가.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