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래셔>호러 마니아를 유혹한다
2009-07-08 13:04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말초적인 시각적 즐거움이나 호기심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한 취향을 하나하나 지적할 순 없지만, 적어도 호러물이 분명 장르 영화의 큰 기둥임을 인정한다면, 그저 그렇게 가볍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호러 영화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 아래 감춰져 있는 불안감을 흔들어 깨워 공포에 찬 진실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매년 여름마다 새로운 공포를 선사하는 호러 영화는 단순히 여름 단골손님으로 치부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저력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의 호러 영화가 존재한다. 공포스러운 느낌보다는 다소 역겨운 장면들 속에서 코믹한 요소를 곁들인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ive), 얼굴을 가린 살인마가 영화 속 등장인물을 무차별 죽음으로 이끄는 슬래셔 무비(Slasher Moive), 초자연적이거나 종교적 내용 등을 소재로 한 오컬트영화(Occult Moive), 호러 영화들 중에서도 그 잔인함의 정도가 진한 하드고어 영화 (Hard-gore Movie) 등이 그 대표로 꼽힌다. 이외에도 스너프, 카니발리즘, 크리처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 호러 영화는 여러 종류를 결합시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시도를 함으로써 그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다.
그 중 가장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스플래터, 슬래셔, 오컬트 장르의 대표작들에 대해 3회에 걸쳐 분석해 본다.
1.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ive)
2. 슬래셔 무비(Slasher Moive)
3. 오컬트 무비(Occult Moive)
1984년 미국 10대를 열광시킨 나이트메어의 주인공 프레디 크루거. 최근 고전 호러물의 리메이크 붐을타고 2010년 리메이크된다. |
'슬래셔'는 영어 단어 Slash에서 시작 된다. Slash(칼등으로 깊숙하게 찔러내다)에 인간의 명사형 어미인 -er을 붙여 만들어진 언어인 Slasher는, 칼·나이프 등의 무기로 잘라내는 사람, 이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슬래셔의 시작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1960)’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슬래셔의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회사 공금을 들고 도망친 첫 희생자 ‘마리오(쟈넷 리 분)’는 결코 모범적인 여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1980년대 슬래셔에 등장하는 10대들은 모두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현재 전형적인 공식이 된 ‘10대들이 금지된 행동(마약, 섹스 등)을 하는 경우 반드시 살인마에게 당한다’는 법칙을 넓게 해석할 때 ‘사이코’에서 ‘마리오’의 행위와 그에 대한 응보로 잔혹한 처벌이 이루어진다는 규칙과 일맥상통 한다.
또한, 모든 살해는 ‘노먼 베이츠(안소니 퍼킨스 분)’의 영역인 ‘베이츠 모텔’에서 벌어진다. 이후 나온 많은 슬래셔 영화들의 살인마들도 자신들만의 특정한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를 시작으로 한 1970년대의 초기 슬래셔에서는 주로 문명과 격리되지 않은 현실적인 범인과 사건이 발생한 뒤 범인을 찾아나가는 식으로 전개되는 미스터리 요소를 갖추기 시작했다.
‘사이코’가 거대한 틀을 완성한 이 장르는 향후 밥 클락의 ‘블랙 크리스마스(1974)’, 알프레드 솔 감독의 ‘엘리스 스위트 엘리스(1977)’, 토비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1974)’, 그리고 이태리 호러의 대부 마리오 바바의 ‘죽은 신경의 꿈틀거림(1971)’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편 ‘사이코’에서 선보였던, 흉기를 이용한 잔인한 살해방법은 이후 제작되는 슬래셔에서 다양하게 응용된다.
‘사이코’ 이후 ‘토비 후퍼’의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은 피해 대상자를 젊은이들로 만들어 가는 형식, 마스크를 쓴 살인마, 살인마의 독특한 카리스마 형성, 여 주인공의 필사적인 도망, 그리고 명백한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살인과 같은 일반적인 슬래셔의 형태를 만들었다.
슬래셔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존 카펜터‘의 ‘할로윈(1978)’ 이후부터라는 게 일반적이다. 이 작품은 초기 슬래셔의 특징들을 하나로 합치며, 이후 발표한 아류작들의 성공에 힘입어 호러물의 한 장르로 자리를 굳혔다.
할로윈은 역대 ‘호러 캐릭터 중 베스트 10’에 들 정도의 위력을 지닌 ‘마이클 마이어스’는 슬래셔의 전형적인 살인마로 떠올랐다. 멋진 비명과 신들린 듯한 극한의 공포를 연기하며, 호러 영화의 히로인으로 거듭난 ‘제이미 리 커티스’는 최후에 생존하는 마지막 여주인공의 모습을 완성시켰다.
또한 32만 5000달러의 제작비로 47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엄청난 상업적 성공으로,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와 배급사들이 슬래셔 영화의 상업성에 주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호러영화를 대표하는 시리즈 중 하나인 '13일의 금요일'은 하키마스크를 쓴 살인마 "제이슨 부히스"를 탄생시키며 현재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
‘할로윈’의 영향 아래 등장한 많은 슬래셔 대표작은 ‘숀 S. 커닝햄’의 ‘13일의 금요일(1980)’ 시리즈와 ‘웨스 크래이븐’의 ‘나이트메어(1984)’ 시리즈가 있다. 이들 시리즈는 ‘할로윈’과 함께 슬래셔의 붐을 이어 나갔다. 지금까지 10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진 ‘13일의 금요일’과 7편의 시리즈가 만들어진 ‘나이트메어’는 시리즈 호러의 최고 인기작이자, 살인마 ‘프레디 크루거’와 ‘제히슨 부히스’를 호러 최고의 인기 캐릭터로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저예산으로 큰돈을 벌 수 있는 장르로 인식된 슬래셔는 인기와 함께 쏟아지는 비판의 화살 표적이 됐다. 슬래셔는 살인자의 시점과 희생자의 시점을 교대로 자주 보여준다. 가학과 피학을 오가는 매력 앞에서 청소년 관객 대부분은 가해자의 입장으로 돌아선다.
이로 인해 청소년 범죄의 증가와 호러 영화와의 관계가 집중 조명됐다. 지나친 폭력과 고어 장면(과도한 신체훼손)의 강조가 청소년들을 폭력에 중독 시킨다는 거센 비난에 시달리게 됐다.
미국의 영화 평론가 제프리 스콘은 “영화표와 비디오를 구입하는 청소년들의 힘이 슬래셔가 융성하게 만들었다”며 “하지만 미학적 가치를 우선하는 주류 언론의 비평가들에게 그것은 영화의 재앙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한 “청소년들이 유혈이 낭자한 슬래셔에 열광하는 것은 그들의 성적 억압을 대리 표출하기 때문이 아니라 과도한 폭력이 제공하는 흥분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곳곳에서 나오는 비판들로 서서히 위기에 봉착하게 된 슬래셔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으로 넘어가면서 더욱 그 입지가 좁아지게 됐다.
하지만 ‘웨스 크레이븐’이 제작한 ‘스크림(1996)’의 등장으로 슬래셔는 다시 한 번 부활의 기지개를 폈다. 이 작품은 완벽에 가까운 각본과 탄탄한 화면 구성으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기존 슬래셔의 고답적인 공식을 시시콜콜 뒤집어엎는 영리한 시도를 통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슬래셔 영화는 '쏘우(2004)'와 ‘호스텔(2005)’ ‘힐즈 아이즈(2006)’ 같은 흥행작들을 내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아주경제= 인동민 기자 idm81@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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