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파일) 주식시장 감시 기능 흔들린다
"대기업 공시만 바꿔선 재무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8일 첫 시행한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중요사항 공시규정'이 반시장적 경영을 제대로 감시하기 어렵단 이야기다. 이 규정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에 따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기업에 대한 사전규제를 줄이는 대신 자율감시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해당 기업집단 내부거래 현황을 규모와 관계 없이 매트릭스 형태로 공시하도록 했다. 이는 부당 내부지원 가능성을 줄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공시제도 강화만으론 기업 재무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해외 계열사에 대한 재무정보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너와 계열사간 지급보증ㆍ담보제공 내역 역시 빠졌다. 사후 제재가 미약할 뿐 아니라 공시 주기도 연 1회로 적시성이 떨어진다. 시민단체도 이를 문제 삼았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에서 재무상황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경영을 제대로 감시하기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 정도론 출총제 공백을 채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계열사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지 않아 회사와 투자자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긴 사례가 있다. 2003년 SK글로벌 사태다. 당시 SK는 SK증권을 지원하려고 SK글로벌 해외법인에게 옵션계약을 체결하도록 해 큰 손실을 입혔다. 해외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 부실을 떠안는 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다. 규정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태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오너와 계열사간 지급보증ㆍ담보제공 현황 역시 공시 대상에 넣어야 한다. 사적 채무를 회사에 떠넘긴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회장은 개인 보증채무를 회피할 목적으로 현대자동차를 통해 현대우주항공ㆍ현대강관에 불법적인 출자를 감행했다. 이 여파로 현대자동차는 천문학적 손실을 입었다. 오너와 계열사간 지급보증ㆍ담보제공 내역은 재무적 위험을 감시하는 데 핵심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이에 대해 기업집단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 한 규정상 미비점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부족한 점을 채울 대안으론 사후규제제도 강화를 들 수 있다. 출총제를 포함한 사전규제제도 폐지로 생긴 공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론 증권 대표ㆍ집단소송이 꼽힌다. 허위공시와 미공시에 대한 공정위 제재만으론 한계가 있다. 공시 정보가 주가에 부정적으로 반영되면 투자자는 소송으로 제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공시로 확인된 손실 책임을 추궁할 사후규제제도 정비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업공시제도가 제 역할을 다하려면 지속적으로 정비돼야 한다. 그래야 시장도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소홀히 한다면 투자자와 회사 이익에 반하는 사태가 되풀이될 빌미를 주는 것이다. 이는 당사자만 피해를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국 국가 전체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공시제도만으로 시장 건전성이 유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당국이 앞장서 반시장적 제도를 보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조준영 기자 jjy@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