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권의 싱글 톨 아메리카노) '봉구의 자존심과 박삼구 회장의 희망'

2009-07-03 08:06

2002년 개봉된 ‘라이타를 켜라’라는 코메디 영화가 있다. 우리의 주인공 어리버리 허봉구(김승우)는 예비군 훈련을 갔다가 전 재산 300원을 투자해 라이타를 샀다.

그런데 그 소중한 라이타를 서울역 화장실에 두고 나오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만난 조폭 두목(차승원)이 그 라이타를 주머니에 넣고 만다.

열 받은 허봉구는 서울부터 부산까지 가는 새마을호 기차에 조폭 두목을 따라 타고는 죽도록 맞으면서 라이타를 내놓으라고 한다. 아침에 갖고 나온 돈은 바닥 나고 마지막으로 남은 돈 300원으로 산 라이터.

불굴의 예비군 정신? 아니, 내 돈 300원이 아까운 허봉구다.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엊그제 주운 동전 하나도 잃어버리면 아깝기 마련이다. 라이터는 봉구의 자존심이었고, 그의 희망이었다.

2006년 1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에 강한 의지를 다졌다.

청계산 산행 중 박 회장은 “작년에 환갑을 보냈고 60이란 숫자에 의미를 부여한 것 같다”며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당시 함께한 기자들 역시 “그 때 박 회장이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 든 이유는 금호산업과의 시너지와 인재확보에 대한 욕심이 컸고, 그의 희망을 봤다”고 회고했다.

“성장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꼭 해야 돼. 열 번 구애하면 넘어온다는 말처럼 열 번 찍어서 안 넘어 가는 나무가 있겠냐. 건설회사는 사람이야. 누굴 시켜서 대우건설 사람들의 능력을 알아보라고 했는데 회사도 좋지만 사람들 능력도 최고인 것 같아. 나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인재들을 꼭 사고 싶어.”

품에 안은 지 3년. 그토록 원하던 대우건설을 인수했지만 결국 다시 시장에 내놓는 박 회장의 마음은 오죽이나 하겠는가.

금호가 대우건설을 내놓은 것을 보고 놀란 사람이 적지 않다. 어느 오너가 그룹의 주력사를 쉽사리 팔 수 있겠나. 열 손가락 깨물어 어느 하나 아프지 않을까. 손가락이 다 똑 같으면 손이 아니겠지. 엄지는 엄지대로, 검지는 검지대로 자기 생긴 대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우건설 완전 인수는 실패로 돌아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선설 인수합병(M&A)을 시도한 것은 애초에 나쁜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3조원 이상을 ‘빚’으로 충당하고 여기에 매년 이자에 향후 주식전환 가능성까지. 특히 암울하게 전개될 것이 확실시 되는 2008년 초. 무리하게 거대한 금액으로 ‘대한통운’을 추가 M&A하면서 결국 화를 자초했다.

이를 두고 재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이런 무리수를 둔 것은 결국 글로벌 ‘거시경제 환경’을 충분히 관찰하고 조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일 아침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빌딩 3층 강당에서는 2009년 신입사원 입사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박 회장은 “신입사원 여러분에게까지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지만 여러분이 그룹의 복덩이가 돼서 회사에 큰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현재의 위기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이왕 닥친 것이니까 슬기롭게 극복하자는 분발의 말도 빼놓지 않으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1979년 석유파동, 1997년 외환위기 등 굵직한 파동을 직접 겪고 이겨낸 박삼구 회장. '500년 영속기업'을 향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또 다른 시작을 보고싶다. 

아주경제= 박상권 기자 kwo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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