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영화의 큰 기둥 <호러>

2009-07-01 14:17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말초적인 시각적 즐거움이나 호기심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다. 그러한 취향을 하나하나 지적할 순 없지만, 적어도 호러물이 분명 장르 영화의 큰 기둥임을 인정한다면, 그저 그렇게 가볍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호러 영화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현실 아래 감춰져 있는 불안감을 흔들어 깨워 공포에 찬 진실을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매년 여름마다 새로운 공포를 선사하는 호러 영화는 단순히 여름 단골손님으로 치부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저력만큼이나 다양한 방식의 호러 영화가 존재한다. 공포스러운 느낌보다는 다소 역겨운 장면들 속에서 코믹한 요소를 곁들인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ive), 얼굴을 가린 살인마가 영화 속 등장인물을 무차별 죽음으로 이끄는 슬래셔 무비(Slasher Moive), 초자연적이거나 종교적 내용 등을 소재로 한 오컬트영화(Occult Moive), 호러 영화들 중에서도 그 잔인함의 정도가 진한 하드고어 영화 (Hard-gore Movie) 등이 그 대표로 꼽힌다. 이외에도 스너프, 카니발리즘, 크리처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 호러 영화는 여러 종류를 결합시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는 시도를 함으로써 그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다.

그 중 가장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스플래터, 슬래셔, 오컬트 장르의 대표작들에 대해 3회에 걸쳐 분석해 본다.


1.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ive),
2. 슬래셔 무비 (Slasher Moive),
3. 오컬트 무비(Occult Moive)

♦ 스플래터 무비(Splatter Moive)

   
 
스플래터를 호러 영화의 장르로서 뚜렷히 구분 짓게한 허쉘 고든 루이스 감독의 '피의 축제'(Blood Feast).
스플래터 무비는 유혈 장면과 폭력, 신체 부위를 절단하는 시각적 묘사에 초점을 맞춰, 조금은 과대 포장한 영화다. 피가 튀는 등의 극도로 잔인한 비주얼에도 불구하고, 우스꽝스런 대사나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코믹한 감각을 보여준다.

스플래터 영화는 1960년대 초에 미국의 허쉘 고든 루이스의 작품을 통해 장르로서 뚜렷하게 구분 되었다. 루이스가 1963년 제작한 '피의 축제'(Blood Feast)는 스플래터 필름의 첫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다. 15년에 걸쳐 상영된 이 작품은 2만4500달러로 제작해 7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루이스는 1960년대 초까지 여성의 누드 장면들을 영화 속에 삽입한 ‘Soft-Core'를 제작 했다. 이후 1963년 저예산 호러영화 제작에 뛰어든 인물이다.

단기간에 한정된 예산으로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장면을 담아 1972년 은퇴 할 때까지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던 감독이다.

스플래터 무비가 장르로서 대중에게 인정받기 시작한 작품은 조지 A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이다. 이 작품에 대해 미국 내와 해외 비평가들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 중 최고의 호러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렸고, 세계적으로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영국의 유서 있는 영화 잡지인 Sight&Sound에서는 이 작품을 1968년 최고의 영화 10선에 선정하기도 하였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 이후 '시체들의 새벽'(Dawn Of The Dead, 1978) '시체들의 낮'(Day Of The Dead, 1985)으로 이어진 시체 3부작은 로메로에게 '좀비 영화의 아버지'란 타이틀을 걸어 줬으며, 또한 호러 영화계에서 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하는데 중요한 작품이 되었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샘 레이미. 그의 첫 장편 영화인 ‘이블 데드’(Evil Dead, 1982)는 전 세계 호러 영화 팬들에게 그의 생애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레이미는 13살 때부터 8밀리 카메라를 구입해 영화를 찍은 그는 지인들에게 연기를 시키며 감독으로서의 꿈을 키워나갔다. 15살에는 영화사에 입사해 실무 작업을 배웠고 그곳에서 소중한 경험을 쌓아 나갔다.

이블 데드는 23세의 레이미를 일약 B급 영화계의 총아로 만들었다. 어렵사리 마련한 35만 달러의 제작비로 완성한 이블 데드는 영화 비평가들에게 “공포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뜨거운 찬사를 받았다.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처음엔 술집에서 비디오로 상영됐다. 이 후 술을 마시면서 보는 사람들에 의해서 점차 유명세를 타면서 극장 개봉까지 이르게 됐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공격하는 존재를 보이지 않은 무엇. 즉 카메라로 설정해놓은 것이다. 보이지 않
   
 
조지 A 로메로는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Living Dead)로 좀비의 영화적 전형을 창안했다.
은 괴물이 된 카메라의 시점으로 주인공을 보고, 쫓아가고 공격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주변 상황들은 모두 공포를 끌어내는 요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엔딩 부분에서 날이 밝으면서 공포의 상황을 종결시키는 대신 레이미는 빠르고 갑작스럽게 주인공을 쫓는 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끝나지 않는 공포를 남긴다. 배리 소넨필드가 촬영을 맡아 거의 날아다니는 카메라 워크를 보여 주었다,

이블 데드는 이후 2편을 거슬러 3편 ‘암흑의 군단’(Army of Darkness, 1993)까지 10년의 세월을 거쳐 제작되었다. 졸작 속편들이 넘쳐나는 다른 호러 영화와는 달리 이 작품은 3부작 모두 걸작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영미 문학권에서 유명한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영화로 연출하여 세계 각국의 언론과 평단의 찬사는 물론, 흥행 면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피터 잭슨.

하지만 잭슨은 할리우드로 진출하기 전 그의 고향인 뉴질랜드에서 ‘고무 인간의 최후’(Bad Taste, 1987), ‘브레인데드’(Braindead, 1992)로 스플래터 영화의 절정이라 할 만큼 피범벅 비주얼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그 중 브레인데드는 스플래터 영화의 결정판이자 자신의 재능을 만천하에 과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전 세계에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으며, 유명한 ‘세이턴’을 비롯한 전 세계 SF 영화상 16개를 휩쓸었다.

이 작품은 잔인하고, 역겹고, 끈적끈적하지만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즐거움과 정신분석학적 아이콘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좀비가 등장하다 보니 유혈은 기본이고 사지절단은 보너스, 거기에다 당분간은 절대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겨지는 좀비의 정사장면과 출산장면이 보는 사람의 비위를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전혀 잔인하게 보이지가 않고 오히려 코믹하다. 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답게 촌티 나는 주인공들의 행동들, 그리고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언을 연상시키는 오버액션을 보여 준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유발되는 웃음 등 이 작품은 공포 속에서도 시종일관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만들어주고 있다.

   
 
23세의 샘 레이미를 일약 호러 영화계의 총아로 만든 '이블 데드'(Evil Dead).
사지 절단, 신체 분쇄 등의 장면만으로도 영화의 60%를 넘게 차지하고 있지만 잭슨의 재치와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는 연출로 코미디 영화로 느껴지게 만들고 있다.

연극 연출가로 활동을 시작한 ‘스튜어트 고든’은 대표적 공포 소설가인 ‘HP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을 각색한 ‘좀비오’(Re-Animator, 1985)란 영화로 감독에 데뷔해 ‘칸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는 파란을 일으켰고, 비평적 찬사와 함께 수많은 호러 영화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다.

고든은 현재 B급 영화의 감독으로 전락했지만 스플래티 무비의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작품 ‘좀비오’ 때문이다. 항상 메이저 영화사들이 그에게 추파를 던지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저예산 방식의 영화제작을 고집하고 있는 특이한 감독이기도 하다.

‘좀비오’는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는 혈청을 발명한 도도한 성격의 의학도를 주인공으로 한 공포 스릴러와 블랙 코미디가 잘 결합된 작품이다. 내용이나 배경은 암울하고 잔혹하지만 전개는 이상할 정도로 경쾌하다.

이 작품은 68년 ‘조지 A 로메로’가 확립한 좀비물의 전형에서 많이 탈피했다. 오히려 주인공이 좀비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란 설정과 또 그 행위에 죄책감을 느끼기는 커녕 오히려 더 당당하게 나오면서 상당히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영화 속에서 좀비가 된 박사가 잘려진 자신의 머리를 들고 나체로 묶여 있는 여주인공을 강간하려는 ‘엽기’ 혹은 ‘변태스럽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이 장면은 좀비오라는 영화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삐뚤어진 지식인의 모습과 감독 특유의 엽기적인 유머 감각이 고스란히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외에 좀비오는 ‘메리 셀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모티브 삼았고 속편에서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를 오마쥬 했다.


아주경제= 인동민 기자 idm81@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