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미대 입시, 실기시험 폐지만이 능사인가?

2009-06-17 11:49


   
 
 
정석원 (엑스포디자인브랜딩 대표)

지난 3월, 홍익대가 2013학년도부터 미대 입시에서 실기시험을 전면 폐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 동안의 잘못된 입시관행을 바로잡고자 하는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방안이었으나, 그 파장이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미술입시는 기능적인 구사능력만을 평가하는 것에 지나치게 치우쳐, 학생의 예술적 창의력 등을 가늠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미술학원은 '미대입시'를 위해 각 대학의 평가기준에 맞춰 커리큘럼을 짜고, 학생들은 학원에서 알려주는 공식에 맞추어 암기식으로 손재주만을 향상시켜왔다.

이에 대한 부작용은 ‘학생의 창의력 저하’ ‘사교육 과열’ ‘입시 부정’ 등으로 나타났고, 마침내 홍익대가 먼저 실기시험 폐지를 결단하기에 이르렀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러한 미술입시의 행태에는 분명 문제점이 존재해온 것이 사실이며,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기에, 이번 결단은 그 동안의 폐단에 일침을 놓는 용단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주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미술대학에서 미술 실기시험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변화의 움직임과 그 취지에는 백퍼센트 동의하지만, 과연 실기시험을 없애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는 더욱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비단, 입시생들과 미술학원 측의 논란거리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향후 이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 즈음 이를 수용하게 될 기업들에게도 이번 일은 중요한 이슈가 된다. 각 기업들이 인재를 채용할 때 기본적 채용기준으로 ‘대졸 자격’을 채택하고 있는 것은, 해당 분야의 소질과 재능을 갖춘 학생들이 대학교육과정을 이수함으로써 더욱 전문성을 지닌 알찬 인재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대학 입시의 ‘실기시험 폐지'는 자칫 예비 사회인이 될 미술대학 졸업생의 소질과 재능에 대한 평가를 기업이 떠안아야 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더군다나 대학에서 배출되는 엄청난 수의 졸업생들 속에서도 인재다운 인재를 찾기 어려운 요즘, 기업으로서는 더욱 막막함을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이대로라면 각 기업들은 채용을 위한 별도의 검증과정을 만들어야 하며, 채용 이후에도 또다시 교육을 시켜야 하는 등, 2중 또는 3중의 고생을 치러야만 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할 사실은 ‘대학의 역할’이다. 대학을 ‘포도주 공장’에 비유한다면, 품질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좋은 포도 원료’가 필요하고, 몇 년간 잘 숙성시켜 ‘좋은 포도주 상품’으로 만들어 이를  ‘까다로운 소비자’에 판매하게 되는 과정을 생각하면 된다.

다시 말해, 좋은 학생(=원료)을 선발하여 쓸만한 인재(=상품)로 키워서 기업(=소비자)에 공급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인 것이다. 따라서 최종 소비자인 기업이 신뢰할 수 있도록 ‘좋은 원료’를 엄선하는 과정 또한 대학이 가져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제 대학은 소비자인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의 기준을 철저하게 충족시켜 주는 것에 대학 교육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기업이 원하는 디자인 인재는 ‘지적 능력’만 뛰어난 사람도 아니요, ‘기술 능력’만 뛰어난 사람도 아니며, 무엇보다 ‘창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원한다. 물론, 창의력에 기반을 두면서 앞의 두 가지의 능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사람이면 가장 금상첨화일 것이다.

실기시험 폐지에 따른 대안으로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한 심층면접 등의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기업이 신뢰할 만한 수준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의 궁극적 역할이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인 만큼, 눈앞에 닥친 입시 제도의 폐단을 개혁하는 데만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향후 학생의 미래와 사회의 요구에 대해 다각적인 고려를 통한 대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은 ‘대학입시’라는 시장에서는 ‘소비자’로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사회와 기업에 대해서는 ‘공급자’ 위치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시장에서 정점에 있는 ‘최종 소비자’는 모름지기 ‘기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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