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비정규직법 무력화…계약직 '부글부글'

2009-06-10 17:33
과중한 업무부담에 고용보장은 인색

2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시점이 유예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비정규직법에 대한 회의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들이 계약직 직원들의 업무 부담은 늘리면서 고용보장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여 법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10일 은행권에 따르면 A은행은 지난달 28일 일선 영업점의 빠른창구 텔러(계약직)도 적·부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한 데 이어 지난 8일부터는 입출금 신규와 현금카드 발급 업무까지 추가했다.

A은행 노조 측은 은행이 노조와 협의하지 않고 임의대로 진행한 것이라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A은행 빠른창구 텔러인 김씨는 "대출이나 외환 업무, 방카슈랑스 등 돈 되는 일은 정규직이 수행하고 그 밖에 대부분의 업무는 계약직에게 넘긴 셈"이라며 "빠른창구와 상담창구를 이원화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계약직 직원인 오씨는 "빠른창구 텔러에게는 목표 부여 및 실적 관리를 하지 못 하도록 업무 규정에 명시돼 있는데 이를 지키는 관리자는 거의 없다"며 "계약이 만료되기 전까지 업무 강도를 최대로 높이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A은행 측은 "고객 편의를 높이고 민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계약직 직원들에게 일정 부분 업무를 나눠 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재 하나은행에는 2500명 가량의 계약직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B은행은 일부 계약직 직원들이 차별시정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한 데 대해 강압적으로 취하서를 작성토록 해 물의를 빚고 있다.

B은행 계약직 직원인 안씨는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고 직군상 해서는 안되는 업무까지 상부 지시로 수행하고 있는데 부당하게 낮은 처우를 받고 있다"며 "이는 비정규직법 취지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은행들은 계약직 직원들에게 과도한 업무 부담을 지우면서도 무기계약직 전환 등 고용보장에는 소극적이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채용한지 2년이 지난 계약직 직원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비정규직법 규정을 피하기 위해 근무기간이 2년 이상 된 계약직들에게 계약해지 통지서를 발송하고 있다.

은행 정규직 직원들의 연월차수당 반납 등 형식적인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 노력에 대한 계약직 직원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계약직 직원은 "정규직 직원의 경우 연월차 수당을 받지 않는 대신 리프레시 휴가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휴가비까지 받는 등 별로 손해보는 것도 없다"며 "계약직 직원들은 시간 외 수당도 받지 못하고 격무에 시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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