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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되면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제가 원망스럽습니다. 떠난 당신을 위해 이제는 다시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겠습니다. 당신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가 보렵니다.“ 어느 기자가 덕수궁 돌담에 남긴 이 메시지가 기자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공감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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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덕수궁 돌담을 따라 시민들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메시지가 빼곡하다. 5일간의 조문객 방문 수를 알려주듯 검정, 노랑 매듭 물결이 끝이 없다. 다만 이 길의 양 끝에 자리한 두 분향소의 분위기는 전혀 상반된 모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닷새를 맞은 27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분향소 주변은 이른 아침부터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덕수궁 돌담에 남겨진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고 있는 시민들은 하나같이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지지 유무와 관계없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회한의 눈물, 안타까움의 눈물이다.
스물셋에 접어들었다는 대학생 윤서연씨는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나왔을 당시 유권자가 아니었고 사실 정치에도 무관심 했었다”며 “늦게나마 그 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치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어깨가 떨릴 만큼 울고 있는 조문객이 눈에 띄었다. 그에게 내밀 손수건이 없어 안타까울 정도였다. 기자가 다가가자 그는 참았던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냥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직장인 장유나(29)씨는 “(검은 옷을 입고 조문하는 것에 대해)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헌화 후에도 한참이고 주변을 맴돌며 돌아서지 못했다.
분향소 앞에서 조문객들에게 국화를 나눠주는 시민자원봉사자들이 추모 행렬을 질서 있게 정리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부터 나와 닷새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안성풍(40)씨. 중학생과 초등학생 두 자녀를 둔 학부모다. 안씨는 어젯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봉하마을에 조문을 다녀온 뒤 오전에 아이들 등교시키고 또 나왔다고 전한다. 말을 이을 새 없이 바쁜 그에게서 피곤한 기색은 찾을 수 없었다.
자원봉사자 속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이가 있었다. 교통사고 후 병원에 입원 중에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고 대한문 분향소를 찾았다가 자원봉사에 합류했다는 배강옥(64)씨다. 그는 연신 헌화 할 국화를 조문객들에게 나눠주며 간절한 마음을 담아 조문객 한 명 한 명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일손을 돕는 이도 있었다. 서른 둘 미혼의 직장인 서혜원씨는 “힘들진 않다”며 “찾아드는 이가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늘고 있어 힘이 난다”고 말했다.
전철역 인근에서 출근 전 약속시간을 정해두고 만나는 커플, 닷새 내내 이곳을 찾았다는 어르신, 가게 문을 잠시 걸어뒀다는 자영업자 등, 추모 열기에 동참하는 이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정재계 인사 조문행렬 끊임없이 이어져…서울 역사박물관
서울 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조문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한승수 총리 등 현 정부 고위 관계자를 비롯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등이 줄을 이은 것.
앞서 26일엔 구본무 LG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등이 다녀갔다.
박물관 입구 한 켠, 머뭇거리며 들어서지 못하는 조문객이 있었다. 갖추지 못한 옷차림새를 걱정하고 있는 것. 직장인 김봉립(29)씨는 “연신 터지는 플래쉬와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을 보니 긴장이 된다”고 말했다. 또 “밖에 세워진 고급 차량도 부담스럽다”고 덧붙였다. 결국 그는 대한문 분향소로 발길을 옮겼다.
실제 이날 7시부터 세 시간 동안만 22명의 정‧재계 인사가 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박물관 내 청소를 담당한다는 이만숙(62)씨는 “고위층 인사들의 조문이 있을 때마다 수행인과 기자들이 꼬리를 잇는다”고 말했다.
차현정 기자 force4335@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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