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원가절감으로 환율 파고 넘는다"

2009-05-13 15:21


롤러코스터를 타며 오르내리는 환율의 현란한 움직임에 기업들이 대응책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가파르게 치솟았던 환율급등 현상을 겪으면서 환율변화에 나름의 내성이 생긴 탓인지 최근의 급격한 환율하락에도 그다지 당황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환율 등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대비해온 덕분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기업들은 기업경영의 가장 큰 적이라고 할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는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긴장을 끈을 놓지 않고 있다.

◇ 위기감 고조 = 환율이 원화 약세에서 원화 강세로 돌변하면서 환율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무역업계 전반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달러당 1천600원대까지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1천200원대로 급속하게 내려갔다.

물론 불과 1년여 전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천원 미만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달러당 1천200원대의 환율은 수출기업으로서는 아직 상대적으로 나은 여건이긴 하다. 하지만 하락속도가 너무 급격하다는 점이 문제로 꼽히고 있다.

특히 원자재를 수입하는 수출기업은 환율의 급속한 하락으로 채산성 악화가 불가피하다.

이 때문에 무역협회는 정부에 요청할 건의안을 만들고자 800여 수출기업을 대상으로 원화 강세에 따른 대처방안을 조사하고 있다.

노성호 무역협회 동향분석실장은 "업계가 원하는 것은 환율의 안정이며, 너무 급속한 환율 하락으로 기업들의 채산성이 악화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노 실장은 "무역흑자가 큰 상황에서 정부의 환율시장 직접 개입보다는 수입 원자재에 대한 관세 및 부가가치세 부담의 일시적 하향 조정이나 설비투자 관련 조세부담의 축소 등 지원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수출업종인 자동차업계는 전 세계적으로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환율까지 하락하자 표정이 어둡다.

해외시장에서 판매가 부진했던 부분을 만회해 줬던 '환율 메리트'가 힘을 잃으면서 경영난이 가중될 위험에 처한 탓이다.

현대·기아차는 환율이 10원 내려가면 매출이 2천억원가량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두 회사는 그동안 환율상승으로 원화 매출이 늘어난 부분을 해외시장 개척비 등에 투자하면서 각 시장 내 점유율을 꾸준히 늘려 왔다. 올해 1분기에만 현대차와 기아차가 투입한 해외시장 개척비는 각각 2천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환율이 하락하면 마케팅 비용으로 쓸 여유 자금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 "원가 절감으로 환율 파고 넘는다" = 글로벌 매출 비중이 큰 기업들은 환율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업들은 일단 달러당 1천200원대 수준의 환율은 견딜만하다고 보고 추가 하락에 대비해 다각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전망한 것처럼 1천200원대나 혹은 그 이하로 내려가더라도 상대적인 경쟁력은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원가절감, 물류 효율화, 구매합리화 등을 추진하면서 추가적인 환율 하락에 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또 달러, 엔 등 통화별로 지급할 돈과 들어오는 돈이 매칭을 이룰 수 있도록 자금 운용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1천200원 이하로 떨어지면 어려움이 시작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아 원가 절감 등의 대응 방안을 강화할 계획"이라며 "환율 외에 세계 경기 자체가 좋지 않은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장기적으로 환율이 하향 안정화해 연말에는 1천100∼1천200원 안팎까지 갈 것으로 보고 있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꾸민 본사 워룸(WAR ROOM)에서 환율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하면서, 수출과 운전 자본 운용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도 1천200원대의 환율이 심각하게 우려할 정도로 낮은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지난해 1분기에 환율이 960원대에 머물렀지만, 판매실적 성장을 이뤄냈을 정도로 '저환율 리스크'에 충분히 대비할만한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환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경우를 대비한 생산·판매 체질 개선 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환율 효과에 의존하기보다는 원가 절감을 통해 차량 생산비용을 대폭 줄이고 해외 현지 생산분을 늘리는 등 환율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현대차가 지난달 미국과 중국 등 해외 생산법인에서 만들어 판매한 차량은 12만5천364대로, 국내 공장 생산분 판매량보다 5.8% 많다.

◇ 원화 강세에 휘파람 불기도 = 환율하락에 콧노래를 부르는 곳도 있다.

항공업계가 대표적이다. 원화가치가 오를수록, 즉 환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유리한 수익 구조인 만큼 오히려 추가 하락을 기대하는 태도이다.

항공사들은 항공기 임차료, 항공유류 구입비 등 외화로 지출하는 비용이 항공권 발권 수입 등 외화 수입보다 훨씬 많은 탓이다. 실제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환율이 10원 낮아질 때마다 각각 200억원과 78억원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연초 올해 원·달러 환율을 1천200원 선으로 추정했다"며 "현재 환율이 지난 3∼4월과 비교해 다소 안정된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예상 환율보다는 높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해운업계는 환율 변동에 따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다. 매출의 90% 이상이 해외에서 달러로 발생하는데다, 지출 역시 대부분 달러로 이뤄져 환율 득실이 섞여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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