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조직문화 교집합 넓힌다"

2009-05-10 17:23
WSJ, SC제일銀의 성공적 M&A 비결

영국계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은 지난 2005년 제일은행 지분 100%를 33억 달러에 매입, 지금의 SC제일은행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인수 당시 외국 자본을 바라보는 제일은행 구성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미 외국 자본의 쓴 맛을 경험한 터였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은 1999년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털에 헐값 인수됐다. 뉴브리지는 70여개의 지점을 폐쇄하고 직원 절반 이상을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해고했다. 하지만 뉴브리지는 2005년 1조원대의 차익을 거둔 채 발을 빼며 '먹튀' 논란에 불을 붙였다.

두번째 외국 주인을 맞은 제일은행 구성원들은 대규모 감원을 점치며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톰 맥케이브 당시 SC제일은행 최고경영자(CEO)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가 SCB와 제일은행의 인수ㆍ합병(M&A)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맥케이브가 꼽은 성공 비결은 끊임 없는 대화와 타협이다. 그는 누구나 알고 있는 간단하고 명쾌한 해답이지만 이를 실천하기에 한국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특히 제일은행 구성원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이른바 '눈물의 비디오' 정서가 큰 장애물이었다. '눈물의 비디오'란 외환위기로 명예퇴직 당해야만 했던 제일은행 테헤란로 지점 행원들의 일상을 담은 비디오로 당시 제일은행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맥케이브는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그랬듯이 제일은행 역시 고용 불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잔뜩 움츠러 있었다"며 "이런 분위기를 조장해 노조원들을 규합하려는 한국의 강성 노조 또한 SC제일은행의 통합에 큰 걸림돌이었다"고 말했다.

특수 상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두 조직을 통합하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SCB는 5500명의 직원과 440개의 영업점을 통해 400만명의 고객을 상대하는 제일은행을 글로벌 스탠더드와 한국 은행 제도권의 틀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했다.

이를 위해 맥케이브는 우선 각기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 내 다양한 구성원들 사이에서 교집합이 될 수 있는 목표를 찾는 데 노력했다.

그렇게 탄생한 게 '한국의 날'이라는 프로그램이다. 맥케이브는 '한국의 날'이 합병 초기 서로 다른 조직 문화를 이해하는 데 교두보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는 100여명의 직원들을 홍콩과 대만 중국 인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두바이 등 전 세계 40여개 SCB지사로 보내 글로벌 금융시장에 대한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에서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하던 행원들이 글로벌 기업인 SCB의 활동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눈물'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였다. 그 결과 프랜차이즈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사업 환경을 만들자는 본사 차원의 공동 목표에 대한 공감대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의 날'은 현재 SC제일은행이 진행 중인 '파이오니어 프로그램', '해외근무기회', '인터내셔널그래듀에이트(IG)' 등의 다양한 인재양성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렇게 형성된 공동 목표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사내에 다양한 대화 채널을 확보하고 의견 개진에 따른 피드백 처리 방법 등을 놓고 고심하는 등 의사소통 구조를 개선했다. 노사 모두 하루에도 몇번씩 릴레이 토론과 대화를 이어갔고 끊임 없는 피드백이 오갔다.

그는 너무 다른 두 조직이 서로의 의사를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성과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기업 내 직원뿐 아니라 고객, 주주, 공동체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는 두 조직이 주어진 규제의 틀에서 최대한 투명하고 정직하게 대화에 임해야 상호 이해와 신뢰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맥케이브의 노력은 곧 성과로 나타났다. SC제일은행은 M&A 직후인 2006년 1분기 세후 당기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81% 증가한 342억원에 달했고 총 자산도 전 분기에 비해 13조2000억원 늘어난 60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맥케이브는 이밖에 성공적인 M&A를 위해서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멘토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그 역시 2005년 SCB 회장을 맡고 있던 머빈 데이비스 영국 통상장관으로부터 조언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 M&A를 성공시키려면 시장과 고객에 대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해당 분야에서 최소 3~4년간 리더 역할을 해 온 조언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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