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장기 생존 관건은 'CEO 승계'"

2009-05-05 17:13
비즈니스위크, 듀폰의 'CEO 승계의 기술'

세계적인 석유화학기업 듀폰은 올 초 엘먼 쿨먼 수석 부사장을 최고경영자(CEO)로 승진 임명했다. 듀폰 창사 206년만에 처음으로 여성을 CEO 자리에 앉힌 파격적인 인사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쿨먼이 듀폰의 새 CEO로 지명됐을 때 월가에서는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전임 CEO인 찰스 할러데이 회장이 이미 10여년 전부터 쿨먼을 차기 CEO로 지목하고 멘토 역할을 하며 그의 CEO 수업을 거들어왔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경기후퇴로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새로운 리더십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잇따라 CEO 교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기업 내부는 물론 외부에서도 새 CEO를 영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는 CEO 공백을 최소화하는 게 급선무지만 기업들이 임원급 인재 양성에 소홀했던 만큼 인재풀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미국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위크(BW)는 11일자 최신호에서 경제위기로 기업 환경이 급변하면서 CEO 승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듀폰의 사례를 통해 'CEO 승계의 기술(The Art of CEO Succession)'을 소개했다.

미국 채용정보 전문업체 챌린저그레이앤크리스마스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기업에서 퇴출 당한 CEO는 1484명에 달한다. 올해는 이보다 많은 CEO가 자리를 잃게 될 전망이다.

기존 CEO들이야 사상 최악의 실적을 낸 데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 그만이지만 빈 자리를 누가 채우느냐는 기업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하지만 치밀하게 CEO 승계를 준비해 온 기업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경기후퇴로 자금난에 몰린 기업들은 그나마 운영해온 임직원 교육 프로그램도 축소하거나 폐지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부즈앤코에 따르면 기업 CEO들의 평균 임기는 6년에 불과하지만 미국 기업경영자협회(NACD)가 지난해 조사한 바로는 미국 기업의 42.4%가 CEO 승계 프로그램을 전혀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컨설팅업체 RHR인터내셔널에서 경영자문역을 맡고 있는 가이 보딘은 지난해 미래 인재 양성과 관련한 기업들의 문의가 25% 줄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불황기에 인력 개발 예산을 줄이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 만큼 듀폰의 CEO 승계 사례는 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듀폰이 CEO 승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 건 지난 1889년 헨리 듀폰 사장 사후 지배 구조가 흔들리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듀폰가(家)에서 뚜렷한 후계자를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듀폰 사장이 사망하자 회사는 경쟁업체에 매각될 처지까지 몰렸다. 1902년 듀폰가에서 1200만 달러를 들여 회사를 되찾았지만 당시 경험은 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서는 기업이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춘 임원을 양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이후 듀폰은 제너럴일렉트릭(GE), 프록터앤갬블(P&G), IBM, 엑손모빌 등 거대 기업들과 더불어 인재 양성에 주력하는 '아카데미 컴퍼니(Academy Company)'로 거듭났다. 비즈니스위크는  이들 기업들은 차기 CEO를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며 회사 지원으로 다양한 경험과 학식을 쌓은 인재들이 오히려 헤드헌터들의 타깃이 돼 몸값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쿨먼에게 CEO 자리를 내 준 할러데이 회장도 전임자와 사내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CEO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소양을 쌓았다. 1970년대 듀폰을 이끈 어빙 샤피로 전 CEO는 주주총회가 끝날 때마다 할러데이의 실적을 비판했고 외부 전문가를 붙여 그가 리더십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왔다.

1999년대 초 CEO가 된 할러데이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CEO가 되자 마자 CEO 승계 문제를 거론하며 누가 21세기에 듀폰을 이끌어나갈 적임자인지를 고민했다. 그가 당시 점찍은 인물이 쿨먼 현 CEO다.

할러데이가 쿨먼을 처음 만난 건 1990년대 초 일본 도쿄에서 아시아태평양법인을 이끌고 있을 때다. 마케팅 매니저로 1988년 듀폰에 합류한 쿨먼은 당시 전자이미지 부문 수석 임원으로 듀폰 아·태법인을 방문하던 참이었다. 

할러데이는 첫 눈에 쿨먼의 학습 의지가 강하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를 미래의 CEO로 키우기 위해 멘토 역할을 자청하고 나섰다.

그는 이후 쿨먼에게서 CEO 자질을 확인할 때마다 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다. 2004년 쿨먼을 미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 이사회에 앉힌 것도 그의 경영수업을 위한 것이었다. 할러데이는 쿨먼의 다소 조급한 성격을 누그려뜨리기 위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할러데이의 안목은 적중했다. 쿨먼은 1995년 티타늄 기술사업 부문을 거쳐 부사장으로 승진해 새로 맡은 안전산업 부문을 듀폰의 핵심 사업 부문으로 성장시켰다. 할러데이는 쿨먼이 세 아이의 엄마인 데다 마케팅 전문가라는 점에서 듀폰의 CEO 후보들 가운데 보기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적극적인 태도와 거침 없는 말투에서 쿨먼이 회사의 우려를 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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