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
2009-05-05 09:52
박선영의 충장로 칼럼
‘생즉사 사즉생’ 이 말은 춘추 전국시대의 무패신화를 이룬 장군인 ‘오기’가 지은 ‘오자병법’의 ‘필사즉생, 생사즉사’ 이다
우리에게는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 장군께서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살기를 도모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다’고 하여 유명하여 졌다.
최근 우리들은 위기의 상황에 봉착했을 때 기업 혹은 정치인들이 이 말을 인용하며 사람들에게 절박한 상황을 전하는 인용구로 사용 된다.
하지만 이 말이 어찌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일시적인 수단으로만 쓰여진단 말인가?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될 지침이 아닌가 싶다.
전쟁터에서 죽기를 두려워해 꼼작을 못하고 총을 쏘는 사람은 너무나 쉽게 적의 과녁이 될 것이 자명하다. 반면에 되려 죽기를 각오하고 적진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며 뛰어가는 사람은 오히려 맞추기가 어려워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움직이는 과녁을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공격이 최고의 방어가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현안에 대해 이런 각오로 임한 다면 못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9시간 혹은 12시간짜리 강의를 죽을 각오로 했던 것이요. 결국은 임직원들에게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그 의식의 근간에 ‘생즉사 사즉생’ 의 심정을 전하려 했던 것이다.
죽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요, 또 변화하기 위해서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하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일을 행함에 있어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의 범위에서만 판단한다면 무슨 발전이 있겠는가? 내가 가진 그 경험을 놓는다 해서 내가 죽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다른 풍성함을 얻을 수 있는 지름 길인데 사람들은 내 손에 있는 그 지식과 경험을 더 크고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잠시 미뤄 두는 것이 아니라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무슨 발전이 있을 수 있는가?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내가 행복하고 잘 사는 도구로 활용해야 하는 데 오히려 잘살려고 배운 지식이나 경험 때문에 우리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내 자신이 스폰지가 되어 가감없이 받아들여 내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 앞에 쳐져 있는 지식, 경험이라는 장막이 걷어지는 것이 선행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고 그 순간 세상 만사 내 눈에 보이고 내가 겪는 모든 것들이 나를 채우는 풍성하고 알찬 재원이 될 것이다.
만사를 나 자신이 성장하기 위해서 부족함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진정한 용기를 가지자.
동시에 내 주변 모든 것에서 배우겠다는 겸손함을 가지자.
그야 말로 하루하루를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살아보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은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