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업계, '원톱보다는 투톱'
미국 기업계에 '회장(Chairman) 겸 최고경영자(CEO)'의 역할 나누기가 한창이다. 이사회를 주재하는 회장과 경영을 도맡는 CEO의 역할을 분리하는 것이 경영실적이나 주주 이익에 이롭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많은 기업 대표와 투자자,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들 사이에서 회장 겸 CEO의 역할을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고 31일 전했다. 일각에서는 회장과 CEO를 따로 두는 것을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 상장 조건으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S&P 500 기업 중 회장과 CEO를 따로 둔 기업(출처:WSJ) |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주 가치 제고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행동주의 투자자들이 기업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의결권 자문사인 리스크메트릭스그룹에 따르면 올 들어 미국 기업 주주총회에서 독립적인 이사회 회장 영입을 요구하는 결의안만 39건이 제출됐다. 지난 한해 제출됐던 것보다 5건이나 많다.
또 지난 2002년 이후 10개 기업의 주주총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과반수 찬성을 얻었다. 미국 최대 저축은행 워싱턴뮤추얼(WAMU)의 경우 지난해 같은 내용의 결의안이 주주총회를 통과했고 이사회는 케리 킬링거 당시 회장 겸 CEO의 회장직을 박탈했다. 그는 같은해 9월 회사가 JP모건에 인수되기 직전 CEO직에서도 물러났다.
미국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의 렉스 틸러슨 회장 겸 CEO도 회장직이 위태로운 상태다. 행동주의 투자자인 로버트 몽크스가 외부 회장 영입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는 5월 주주총회에 틸러슨의 회장직 박탈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이번이 일곱번째로 지난해 낸 결의안은 39.5%의 주주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회장과 CEO로 이뤄진 '투톱' 체제를 지지하는 이들은 이같은 구조가 경영실적과 주주 이익 실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코퍼레이트라이브러리는 회장 겸 CEO가 지배하는 기업은 임원들의 임기가 길고 이사회가 불규칙적으로 열리는 데다 이사진도 CEO의 입맛에 맞게 구성돼 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존의 기업지배구조를 옹호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이들은 CEO와 회장의 역할이 분리되는 경우, 특히 사외 이사 등 외부 인사가 회장직에 오르면 권력 다툼이 일어나 임직원들이 혼란에 빠지기 쉽다고 주장한다. 인력관리업체인 콘/페리인터내셔널의 데니스 캐어리는 "대부분의 CEO들은 일인자의 지배 체제를 선호하기 때문에 회사 이사회도 직접 주재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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