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태성의 금융프리즘] 외국계 은행이 욕먹는 이유

2009-03-31 15:01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한참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 엄청난 시세 차익만 남긴 채 손을 뗀다는 이른바 '먹튀' 논란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외국계 자본이 차익만을 노리고 국내 금융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비판론이 득세했고 외국 언론들은 한국 자본주의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며 꼬집었다. 진정한 글로벌화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태성 금융부 차장
금융위기 사태로 이같은 상황은 역전됐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를 휩쓸면서 세계화 자체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외국계 은행들의 행태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영국계 SC제일은행과 미국계 한국씨티은행,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이 국내 금융시장 사정을 무시한 채 호주머니 불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들 은행은 은행권의 영업시간 변경 방침에도 반발하며 기존 영업시간을 고수하기로 한데다 중소기업과 서민을 위한 지원도 외면하고 있다.

은행 영업시간은 국민들의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일반 고객들은 은행권 영업시간에 생활 사이클을 조절할 수 밖에 없다. 은행의 공익적인 성격을 감안한다면 고객에게 개별 은행의 개점 시간까지 확인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밖에 없다.

최근 외국계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에 비해 감소했다. 은행권 전체 대출이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은행도 기업으로써 이익창출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치권은 물론 재계와 국민 모두가 힘을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눈총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은행 뿐만이 아니다. 외국계 증권사는 물론 카드사 역시 국내 규정과 정서를 무시하는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증권사의 공매도와 관련 금융감독원은 외국계 증권사 18개 모두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위기설과 기업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의 진원지가 외국계 증권사와 관련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발급되는 해외 겸용카드의 70%가 제휴를 맺고 있는 비자카드는 국내 카드 이용 수수료율을 인상할 계획이다.

비자카드는 지난해 국내 결제수수료로 수백억원을 챙겼다. 해외 결제가 아닌 국내 결제는 비자의 결제 망을 이용하지 않는다.

업계에서 단지 비자 로고가 붙어 있다는 이유로 막대한 국내 결제수수료를 챙겨간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해가 간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에서는 외국계 금융기관의 선진 금융기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전반적인 중론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투자은행들이 잇따라 문을 닫았고 미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 받은 AIG가 보너스 지급 스캔들로 다시 한번 출렁이는 등 한국인들에게 외국계 금융기관은 더 이상 본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무분별한 탐욕과 모럴헤저드로 금융위기를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욱 커지고 있다.

외국계 금융기관은 한국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논하기에 앞서 과연 현지 시장에 동화하고 현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는가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한때 세계 1위를 자랑하던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 위기에 처한 것도 최고라는 자만 속에 현지화와 고객의 니즈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최고는 언제나 뒤바뀌게 마련이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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