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도 없는데 보험은 무슨"...보험·적금 해약 급증
"남편이 실직해서 생활비부터 줄였지만 적금과 보험을 계속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애들 학원비도 못내는 상황에서 매달 적금과 보험료를 내는 것은 정말 힘드네요"
시중은행 영업점을 찾은 이 씨(여, 40세)는 5년 동안 납입한 정기적금과 청약저축을 해약했다. 청약저축은 이자로 원금의 8% 정도를 받을 수 있었지만 정기적금의 이자는 손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씨는 남편 명의로 가입한 변액보험 역시 미련없이 해약했다. 당장 생활비도 모자란 판에 월 수십만원에 달하는 변액보험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3년 동안 납입한 변액보험을 해약하고 받은 돈이 원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기침체 한파가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고용시장 한파가 거세지고 임금이 삭감되면서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가입한 적금과 보험을 해약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적금과 보험을 해약하는 가입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보험료를 내지 못해 효력을 잃는 실효 역시 급증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서민들이 현금 마련을 위한 생계형 적금·보험 해지가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분기 생명보험 가입자의 해약 및 실효 건수는 220만건에 육박하면서 전년 동기에 비해 15.6% 증가했다. 보험사가 지급한 환급금만 8조원이 넘어섰다.
손해보험 가입자의 해약과 실효 역시 같은 기간 133만건을 넘어 전년 대비 36.7% 늘어났다. 환급금은 더 크게 늘어나 40%가 넘게 증가한 1조4582억원을 기록했다.
생활비를 비롯한 현금 마련을 위한 보험 해약이 늘면서 보험사의 실적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3개 분기에 14개 생보사의 전체 당기순이익은 761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9500억원 가까이 감소했다.
업계에서는 실효는 나중에 부활이 가능한 것이어서 생각만큼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생계형 보험 해약의 여파는 피할 수 없다는 평가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실효와 해약이 같이 집계됐다"면서 "실효된 계약의 비중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실제 해약으로 인해 가입자가 찾아간 환급금은 6조원을 밑돌 것"이라고 밝혔다.
실효란 보험료를 2개월 이상 내지 않아 효력이 상실된 것을 말한다.
생보협회 측은 보험 해약·실효가 늘어나면서 보험사의 실적에 어느 정도의 영향은 불가피하겠지만 매우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은행권 역시 불황의 여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행을 비롯한 우리·신한·하나은행 등 주요 4개 은행에서 고객이 해지한 정기적금 계좌는 지난 2월 18만개에 육박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고객 이탈이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적금 해약이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의 유동성 공급과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돈맥경화' 현상이 풀리지 않고 있는 가운데 소액신용대출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은행과 저축은행 등 일반 금융기관들이 돈줄을 풀지 않으면서 서민들의 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개인워크아웃 대상자 중 1년 이상 채무상환을 성실히 진행한 '정상 상환자'를 대상으로 500만~1000만원을 대출해주는 소액금융 지원은 지난 한해 140억원대에 육박했다. 지원 대상만 4488명을 기록해 전년 대비 4배가 늘어났다.
월별로는 12월 20억원을 넘어선 이후 1월 18억4400만원으로 다소 줄었지만 2월에는 38억1700만원으로 큰 폭 증가했다.
신용회복위원회 신중호 팀장은 "최근 소액금융 신청 추이를 보면 전반적인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 팀장은 "현재 소액금융 재원은 7개 은행이 지원한 140억원을 비롯해 260억원 정도"라면서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추가 재원 지원이 불가피한 상태"라고 말했다.
신 팀장은 대전광역시에서 무지개프로젝트의 무지개론을 통해 10억원을 무이자로 지원했지만 이 역시 거의 소진됐다면서 "제도 금융권을 이용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정부는 물론 지자체에서 활발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