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타결 '초읽기' 돌입
2009-03-16 08:55
한국과 유럽연합(EU)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동안 양측이 팽팽한 대립을 보여온 자동차 등 공산품의 관세철폐 시기는 물론 서비스, 비관세장벽 등의 분야에서도 핵심쟁점에 대해 의견 접근을 이룬 것으로 나타났다.
관세환급과 원산지 문제 역시 양측의 의견 차가 상당히 좁혀져 오는 23∼24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8차 협상에서 타결이 선언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 단기철폐율 한미보다 높지만 車는 늦어
정부 당국에 따르면 품목수를 기준으로 3년 내 관세가 철폐되는 비율은 우리 측이 EU 상품에 대해 96%, EU 측이 한국 측 상품에 대해 99%선이다.
일단 비율상으로는 한미 FTA 당시 미국이 철폐하기로 한 비율인 91%보다 높다.
미국의 경우 배기량 3천cc 이하 승용차에 대해서는 관세를 협정 발효 즉시 철폐하고 3천cc 이상 승용차는 발효 뒤 3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하지만 EU는 기준이 이보다 길어 2천500cc 이상은 3년 내, 그보다 작은 소형차는 5년 내에 걸쳐 균등 비율로 관세가 없어지게 된다.
이렇게 된 데는 금융산업 다음으로 전 세계의 골칫거리가 된 자동차산업의 상황과 현재의 관세율 차이가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동차 원조'인 유럽 자동차업계가 대부분 정부의 공적 지원을 바랄 정도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자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 회장인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어 유럽 업계의 한.EU FTA 공개 반대방침을 천명한 바 있다.
여기에 미국은 차 관세율이 2.5%에 불과하지만 EU는 10%나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관세 인하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
미국과의 FTA에서는 관세율을 낮추는 대가로 자동차 개별소비세와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를 내줘 '조세주권 양도'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이런 문제가 없는 대신 EU가 줄기차게 요구해온 자동차 기술표준을 양보했다.
쉽게 말해 벤츠와 BMW 등 EU산 자동차가 한국의 규제에 맞춰 별도 옵션을 갖추지 않고도 팔 수 있게 된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EU 업계의 불만사항인 배출가스 자기진단장치(OBD) 장착문제는 2013년까지는 일정 수량에 대해 이 장치가 없어도 수입을 허용하고 2014년 이후에는 한층 강화된 배기가스 기준인 '유로 6' 규제에 따라 수입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측의 합의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유럽에 수출하는 품목 가운데 14%의 관세가 적용되는 TV와 2천500cc 이하 자동차 등만 협상 발효 3년 뒤에도 관세가 남아있게 된다.
대신 우리 측은 EU산 압축기와 공작기계 등 기계류, 모직물, 정밀화학 제품 일부에 대해 관세철폐 기한을 3년 이상으로 설정했다.
특혜관세 적용대상을 판별하는 핵심 기준인 원산지 문제는 결론이 나지는 못했지만 의견차가 상당히 좁혀진 상태다.
양측은 화학제품을 중심으로 일부 품목에만 세번 변경기준을 적용하고 나머지 공산품에는 세번 변경기준과 역내생산 부가가치 기준을 병용해 원산지를 판정한다는 데 의견 접근을 봤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부가가치 기준의 경우 역내 생산비율이 한미 FTA는 40∼45%선인데 비해 EU와는 대체로 45% 안팎에서 결정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자동차 등 관세환급 문제도 아직 의견일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우리측이 워낙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실상 관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캐서린 애슈턴 EU 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완성차 제조에 필요한 부품을 중국 등지에서 들여올 때 물었던 수입관세를 돌려주는 관세환급과 관련해 한국이 이 문제에 대해 재협상을 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 사실상 EU가 양보했음을 시사했다.
◇ 개성공단은 한미 방식 따르기로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문제는 한미 FTA에서 택한 방식을 따르기로 양측이 의견 접근을 이뤘다.
한미 FTA에서는 협정 발효 1년 뒤에 한반도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열어 한반도 비핵화 진전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역외가공지역(OPZ)을 지정할 수 있다는 별도 부속서를 채택,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당초 우리측은 과거 유럽 자유무역연합(EFTA)과의 FTA에서 합의한 것처럼 개성공단산 제품에서 재료비 기준으로 남한산의 비율이 60%를 넘고 북한산의 비율이 가격기준으로 40%를 넘지 않으면 이를 역외가공방식으로 인정해줄 것을 EU측에 요구해왔다. 반면 EU는 개성공단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받아들이면서 뚜렷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 로켓 발사 등으로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인 영국이나 프랑스 등이 개성공단 제품을 한국산으로 바로 인정하기는 어려워 한미 FTA 방식을 따르기로 했다"고 전했다.
원산지 표기방식과 관련해 'made in EU' 방식은 허용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초 EU 측은 지난 6차 협상 당시 기술 장벽 분야에서 회원국들이 생산한 제품의 원산지 표시를 국가별 명칭이 아닌 `made in EU'로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업계 자율에 맡기자고 제의했다. 우리 측은 이에 대해 우선 EU 회원국들의 제품 중 품질에 차이가 없는 품목들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서비스 분야에서는 기본적으로 한미 FTA와의 균형, 이른바 '코러스 패러티'(KORUS Parity)를 기본으로 하되 하수도 위탁처리와 위성서비스 전용회선 문제 등 환경과 통신 분야에서 한미 FTA 수준 이상, 즉 '코러스 플러스'(KORUS Plus)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EU가 서비스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는 만큼 협상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상징적인 분야에서 한미 FTA 수준 이상을 허용했다고 협상단 관계자는 전했다.
양측은 비관세장벽과 관련해 전기전자 분야에서 자기적합성 선언(SDoC) 도입에도 합의했다. 자기적합성 선언은 제조업자가 안전기준을 충족했다고 선언하면 별도 인증을 거치지 않는 것으로 EU측은 그동안 이 제도의 도입을 꾸준히 요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