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불꺼진 사무실이 늘어난다
대한민국 오피스 1번지 강남 테헤란로. 강남역 4거리에서 삼성역에 이르는 테헤란로를 따라 마치 높이 자랑을 하듯 20층이 넘는 대형건물들이 위용을 과시하는 곳이다. 하지만 테헤란로가 요즘 심상치 않다.
7일 오후 찾은 테헤란로. 강남역 1번출구에서 역삼역까지 이르는 1㎞ 남짓한 거리 남쪽편으로 들어선 대형빌딩 13개 가운데 무려 9개 건물이 '임대'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거나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경기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입주업체들이 임대료가 보다 싼 곳으로 사무실을 옮기거나 사무실 규모를 축소하면서 비어 있는 사무실이 급속하게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의 중소형 건물의 공실률은 더욱 심각하다. 다른 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빛이 전혀 없어 층이 비어있음을 짐작케 하는 건물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 강남 오피스 공실률 2%대로 = 부동산투자자문회사인 알투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평균 1%대를 유지하던 강남 오피스 빌딩 공실률이 지난해 4분기 들어 2%대로 높아졌다. 대형빌딩이 1분기 1.4%에서 1.9%로 높아졌고, 중소형빌딩은 3.9%에서 6.5%로 치솟았다.
김태호 알투코리아 팀장은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한 강남지역의 경우 작년말부터 임대의뢰 물건이 급증하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 악화되고 있는 경기불황의 그늘이 이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울 도심에서 비어있는 사무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강남 테헤란로변 한 대형 빌딩에 걸려 있는 임대문의 현수막. |
김 팀장은 "현재 2009년 1분기 오피스 동향을 조사하고 있어 최종 분석자료는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조사한 경험을 토대로 볼 때 3%대로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고 예측했다.
한상훈 에이원부동산중개법인 본부장은 "수요가 없다보니 1년씩 비어있는 사무실도 있다"며 "계약기간이 남아 중도해지를 못하고 있을 뿐이지 역세권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거나 테헤란로 이면도로 쪽의 오피스 빌딩은 층 전체가 비어있는 곳도 많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인 저스트알 관계자는 "강남지역은 여의도나 종로와는 달리 큰 기업보다는 중소규모의 업체가 밀집해 있다는 특성이 있다"며 "어려움에 처한 기업인 경우 높은 임대료 부담을 피해 송파나 성남 또는 구로디지털단지 쪽으로 움직이는 사례가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강남과 더불어 대표적인 오피스 빌딩 밀집지역인 여의도도 상황은 비슷하다. 여의도 역시 대형빌딩 공실률이 1분기에는 0.3%(1분기)로 사실상 빈 사무실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4분기들어서는 1.4%로 치솟았다.
심민규 김앤장공인 대리는 "공실률이 거의 없었던 여의도역 인근마저 작년 10월부터 공실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1년전만 하더라도 빈 사무실이 나오면 바로 소화가 됐으나 지금은 5~6개월씩 비어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또 "1주일 단위로 여의도 일대 빌딩의 공실률을 체크하는데 공실이 이 정도로 빠지지 않은 적은 처음"이라며 "최근 임대료가 저렴하면서도 여의도 접근성이 좋은 영등포나 당산으로 옮겨가면서 이 같은 현상이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수요 줄었지만 임대료는 안내려 = 서울 오피스 공실률이 급격히 치솟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경기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불황의 골의 깊어지면서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거나 부도또는 폐업업체가 늘면서 오피스 수요도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서울 지역 부도업체수는 33% 증가한 반면 신설법인 수는 오히려 1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어있는 사무실이 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임대료는 내리지 않고 있다.
현재 강남 지역의 3.3㎡당 보증금과 월임대료는 72만원 정도와 6만원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오른 곳이 있다.
건물주 입장에서 임대료가 하락할 경우 건물의 가치도 떨어지기 때문에 쉽게 내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물주들은 신규로 입주하는 업체들에게 렌트프리(Rent Free)를 적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렌트프리란 일정기간(보통 1~2개월) 동안 임대료를 받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렌트프리를 통해 약 10% 정도의 임대료 인하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저스트알 관계자는 "건물주들이 건물의 가치하락을 우려해 여간해서는 임대료를 내리지 않는다"면서 "때문에 렌트프리와 함께 통상적으로 임대료를 받는 인테리어 공사 기간은 임대료에서 빼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실률 증가에 따른 임대료 하락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매매가는 이미 큰 폭으로 하락한 상태다.
김태호 팀장은 "강남을 비롯해 서울지역 빌딩 매매가는 금융위기 직전에 비해 약 25% 정도 내렸다고 보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실제 거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전했다.
테헤란로의 경우 3.3㎡당(연면적기준) 지난해 2000만원에서 1500만원선까지 하락한 상태. 오피스 시장 역시 주택시장처럼 매수 대기자들이 쉽게 매수에 나서지 않으면서 상황이 급해진 건물주들이 할 수 없이 매매호가를 낮춰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차현정 기자 force4335@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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