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공급했더니 겨우 '돈놀이'?

2009-02-26 18:07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하고 시중에 달러가 한푼이 아쉬운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공급한 달러가 금융권의 돈놀이에 사용됐다는 비난이 확산되고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주요 국책은행들이 달러 조달을 위해 지난달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표시 채권을 보험사와 연기금 등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매입한 것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난달 런던 은행간 금리인 리보 금리에 6.15%포인트 높은 금리로 2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채권을 발행했으며 이중 5억 달러는 국내 투자자들이 사들였다.

   
 
사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발행한 외화표시 채권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대거 매입한 것으로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기관투자가들이 국책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사들이는데 사용한 달러가 한은과 정부가 은행에 공급한 외환보유액의 일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수출입은행 역시 앞서 5년 만기로 8.125% 금리를 적용한 20억 달러 규모의 달러 채권을 발행했으며 이중 1억 달러 어치를 국내 기관투자자들이 매입했다.  

금융권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해외에서 채권을 발행하면서 마땅한 자금 운용처가 없는 국내 보험사와 연기금, 자산운용사들이 높은 금리를 좇아 투자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책은행이 달러 조달을 위해 해외에서 발행한 채권을 국내 기관투자가들이 샀다는 것은 '돈 놓고 돈 먹기'식 행태라며 진정한 외환조달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한은이 외환대출과 스와프 경쟁입찰 방식으로 은행에 공급한 달러가 스와프 거래를 통해 보험사와 자산운용사 등에 공급됐으며 이 자금을 통해 다시 해외 채권을 매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국내 달러로 해외에 있는 달러를 조달한 결과가 된 것이다.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전세계적으로 '돈맥경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요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해외 채권 발행은 상당한 관심을 집중시킨 바 있다.

산업은행 측은 국적에 상관없이 참여가 높을 수록 외화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행태가 금융기관들의 모럴헤저드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들은 국책은행의 해외 발행 채권을 국내 기관들이 사들이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산업은행이 해외에서 조달한 20억달러 중 25%에 달하는 5억 달러가 결국 국내 조달과 같다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군다나 한은이 지난해 9월 이후 시중에 521억 달러의 외화유동성을 공급하고 외환보유액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관투자가들이 국익은 배제한 채 단기 차익만을 노리는 행태를 보였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한은 측은 "돈의 꼬리표가 없는 상황에서 3~4개월 전부터 운용했던 자금이 은행을 통해 나간 것"이라면서 "기관투자가들이 국책은행의 외화표시 채권을 샀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은 관계자는 "예수금이 증가해서 채권을 매입했을 수도 있다"면서 "금융기관 자금부와 포트폴리오 운영 부서는 본질적으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부서"라고 강조했다.

모럴헤저드와 관련된 비난에 대해서도 단편적인 시각에서 확대 해석됐다는 것이 한은의 입장이다.

한은 국제기획팀의 하근철 차장은 "금융기관의 포트폴리오 담당 부서는 수익이 높은 곳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면서 "이는 외환당국이 관여할 문제는 아니며 자금 운용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이전 관치금융 시절의 얘기"라고 말했다.

하 차장은 "설사 모럴헤저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의도적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금융기관의 수지가 개선되는 것이 국가경제 차원에서도 긍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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