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부른 '휴대폰 사기' 여전히 기승

2009-02-19 16:31
대출 미끼로 명의도용, 수천만원 피해 발생 관련 당국, "단속 어렵다" 수수방관

대출을 미끼로 넘겨받은 개인 명의로 대포폰을 만들어 수 천만원을 사용한 후 요금 부담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휴대폰 대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사기를 당한 여대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언론을 통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음에도 관련 당국은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19일 금융 당국과 민생연대 등에 따르면 2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휴대폰 대출 사기 피해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휴대폰 대출 사기는 급전이 필요한 대출자가 소액을 받아 쓰는 대가로 개인 명의를 넘기면 대출업자가 대출자 명의로 대포폰을 만들어 수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 천만원까지 사용한 후 잠적하는 등의 수법으로 이뤄진다.

대출업자는 통신요금을 본인이 부담하고 수 개월 내에 대포폰도 해지해주겠다며 피해자를 유혹하지만 결국 수 천만원에 달하는 요금은 피해자 몫으로 돌아온다.

게다가 대포폰을 악성 메일 발송이나 피싱 등에 이용했다면 애꿎은 피해자는 과태료까지 물어야 한다.

실제로 이 모씨(여)는 명의를 빌려주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인터넷 광고를 보고 60만원을 빌렸으나 몇 개월 뒤 SK텔레콤 500만원, KTF 500만원 등 총 1000만원의 요금 청구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그제서야 휴대폰 대출 사기에 당한 것을 알았지만 요금 부담을 고스란히 떠앉을 수 밖에 없었다.

민생연대 홈페이지에는 지금까지 총 44건의 피해건수가 접수됐다. 지난해 6월 첫 피해 사례가 접수됐으며 올 들어 1월에만 17건이 접수됐다.

송태경 민생연대 사무처장은 "적게는 200~300만원에서 많게는 2000~3000만원까지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당국은 피해 규모를 집계한 통계는 커녕 주의를 당부하는 홍보 활동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유사금융조사팀 관계자는 "휴대폰 대출 사기는 대출을 빙자한 사기의 한 유형이기 때문에 금융 당국이 나서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무등록 대부업체의 광고 활동을 제재하는 방안은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관련 당국은 물론 이동통신업체도 휴대폰 대출 사기를 막기 위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송 사무처장은 "개인 명의로 복수의 핸드폰을 개통하는 경우 그 가운데 대포폰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동통신업체는 휴대폰 대출 사기에 대한 주의사항을 문자메시지로 발송하고 방송통신위원회도 피해 방지를 위한 개선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 당국은 무등록 대부업체나 대출 모집자들이 마음대로 홍보 활동에 나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미호 기자 mihole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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