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파일] 경쟁사간 사외이사 공유 괜찮을까
금융인 출신인 A씨는 SK지주와 KB지주에서 사외이사를 겸임하면서 보수를 양쪽에서 받는다. 두 지주사는 자회사 가운데 금융사가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대학 교수인 B씨는 LG전자와 SKC&C 양쪽에서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회계사인 C씨는 LG디스플레이와 SK에너지 두 곳에서 사외이사이며 금융인 출신인 D씨는 두산과 SK에너지, SC제일은행 세 곳에 속해 있다.
문제는 사외이사가 둘 이상 회사에 버젓이 속해 있는 것 자체에 있다. 상근 임직원이라면 현행 상법에 따라 이런 식으로 근무하는 게 금지된다. 사외이사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제한이 적용되고 있다. 상법은 해당 회사와 사업상 경쟁 또는 협력 관계인 법인에 속한 경우 사외이사가 될 수 없도록 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상장법인은 이사회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하며 상장법인은 4분의 1을 사외이사로 채워야 한다. 사외이사는 이사회를 통해 회사 업무집행에 관한 의사 결정과 대표이사 선출, 업무집행에 대한 감시 임무를 맡게 된다. 이들은 회사가 경영 성과를 높이기 위한 전략을 세울 때도 조언할 수 있는 후견인 역할을 한다. 사외이사는 상시적인 회사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지만 경영 활동을 감시할 의무가 있다.
이런 역할이 주어진 사외이사가 경쟁 관계를 가진 여러 회사에 속해 있다면 일방 회사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의사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당국인 법무부 관계자는 "개별 회사에 관한 사안이라 당장 위법 여부를 단정하기는 곤란하다"면서도 "경쟁 관계에 있는 둘 이상 회사에서 사외이사로 근무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당국도 인정한 셈이다. 차제에 사외이사가 둘 이상 회사에 속할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사외이사제도 자체가 무용하다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경영자나 대주주가 모든 권력을 쥐고 이사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사외이사가 공개적으로 선임된다고 하지만 이런 절차 자체에 경영자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게 재계 분위기다. 실제 이사회를 통해 안건이 부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사외이사에 대해 경영진이 내린 결정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회사에서 이사회는 기본적인 경영방침과 장기적인 경영목표를 정하고 이를 위한 경영전략을 수립한 뒤 업무집행 절차를 정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다.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참여해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사내이사가 직무를 적절하게 집행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감시한다. 사외이사는 독립 기관이기 때문에 경영진이 아닌 회사 전체 이익을 보호하는 데 힘을 기울일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치에서 회사 경영이 건전하게 이뤄지도록 감시할 수 있는 지위가 반드시 부여돼야 한다.
조준영 기자 jj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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