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해외건설, 진정한 경쟁력을 보여줄 때다
김흥수 건설산업연구원장
지난해 3/4분기 이후 세계를 덮친 미국발 금융위기에 따른 한파가 국민 최대의 명절인 설마저도 무색하게 만든 모양이다. 그런데 건설업계가 느끼는 한파는 이보다 더하다.
연이어 발표되는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꼼짝하지 않고 있으며, 설 직전 발표된 건설업체 신용위험평가 1차 발표에 이어 내달에는 2차 평가가 착수된다고 하여 건설업계는 온통 뒤숭숭하기만 하다.
이처럼 내수 시장이 어려워지자 다수의 건설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라도 살길을 모색하고자 나서고 있다.
해외건설은 지난 2005년 이후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며 고공행진을 지속하여 2007년 397억 달러에 이어 작년에는 467억 달러로 사상 최대의 수주실적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지난해 말 불어 닥친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세계 경제가 급격히 침체됨에 따라 해외건설 수주도 금년 들어서는 다소 주춤한 상태다.
우리의 양대 주력시장인 중동과 아시아 모두 상황이 악화되었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그나마 벗어나 있다고 평가되던 중동은 유가 하락에 따른 원유수입 감소로 계획되었던 발주가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구미와 유럽 자금들의 이탈로 심각한 외환위기와 경기침체에 빠져 있다.
이에 따라 그간 붐을 이루던 개발사업은 당분간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며, 해외건설의 주를 이뤘던 플랜트 수주 역시 감소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각 나라들이 경기부양을 위해 SOC 발주를 증가시키고 있으며, 미국발 금융위기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은 국가들과 자원을 보유한 국가들이 새로운 시장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등지에서 우리 기업들의 수주 소식이 날아들고, 콩고 등지에서는 자원과 SOC 건설을 연계하는 패키지 딜 협약을 체결하였다는 낭보를 접하게 된다.
흔히 기업이 수익을 내는 데에는 산업효과와 기업효과가 작용한다고 한다. 산업효과란 시장의 활황으로 그 산업 자체가 호황을 누려 해당 산업에 속한 기업들이 수익을 내는 것이다.
반면, 기업 효과란 시장 상황과는 무관하게 특정 기업의 경쟁력으로 수익을 내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년간 우리 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거둔 성과를 두고 일부에서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기인했다기보다는 세계 건설시장의 활황에 기인한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 우리의 실력을 보여 줄 때이다. 경쟁력이란 상황이 어려울수록 빛이 나는 법이다. 겨울에 생긴 나이테가 여름에 생긴 나이테보다 단단하듯 어려운 상황에서 거둔 실적이야말로 우리 경제에 숨을 돌게 할 뿐 아니라 세계 건설시장에 우리 업체들의 경쟁력을 보란 듯이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요즘 그리 유명한 배우를 내세우지도 않고 그다지 많은 예산과 마케팅 비용도 쓰지 않고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과 맞서 700만 관객을 돌파한 우리 영화가 화제다.
영화가 종합 예술이라면 건설 역시 종합 산업이다. 탄탄한 사업 기획력과 프로젝트 전체를 아우르는 관리능력, 그리고 엔지니어 개개인들의 기술력, 여기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까지 뒷받침된다면 세계 유수한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질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위기 속에도 기회는 항상 있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