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제, 먹구름 넘어 폭풍속으로
미국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이 가시기는커녕 더욱 짙어지고 있다. 경제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소비시장이 몰락하고 있는 가운데 기업 활동 역시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매판매 지표가 사상 최대폭으로 감소하고 기업 재고와 판매가 급감하면서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됐던 경제 낙관론도 힘을 잃고 있는 상황이다.
◆소매판매 사상 최대폭 감소=미 상무부는 지난 12월 소매판매가 전월 대비 2.7%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는 월가가 예상한 1.5%에 비해 감소폭이 2배에 가까운 것이다.
이로써 소매판매는 6개월 연속 감소한 셈이 됐다. 미국의 소매판매가 6개월 연속 줄어든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도 소매판매는 9.8% 감소하면서 사상 최대폭으로 줄었다. 2008년 한해 동안 소매판매는 1992년 이후 처음으로 연기준 감소세를 나타내면서 0.1% 줄었다.
사진: 미국경제의 침체가 예상보다 가속화하고 있다.한 트레이더가 증시 급락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
12월 자동차 판매가 0.7% 줄어든 가운데 자동차를 제외할 경우 소매판매는 3.1% 감소했다. 이 역시 사상 최대폭 감소다.
150달러에 육박하던 국제유가가 40달러 선이 무너지면서 휘발유 판매는 15.9% 줄었다. 휘발유와 자동차를 제외하면 소매판매는 2001년 9월 이후 최대폭인 1.5%의 감소세를 기록하게 된다.
이날 지표 결과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 역시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다. BMO 캐피탈 마켓의 마이클 그레고리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면서 "상반기 소비지출과 경제활동 전망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월마트 "상반기 특히 도전적"=재계 역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소매업체 월마트의 리 스캇 최고경영자(CEO)는 "상반기는 특히 도전적인 시기가 될 것"이라면서 "사람들은 먹거리에 대한 지출을 줄이고 있으며 영화 감상과 쇼핑 등 전반적인 지출을 억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캇 CEO의 불안을 반영하듯이 미국 기업들의 판매는 사상 최대폭으로 줄어들었다.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 11월 기업판매는 5.1% 감소했다. 이는 지난 1992년 지수가 산정된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같은 기간 기업재고는 0.7% 감소해 기업 판매에 대한 재고 비율은 2001년 이후 최고치인 1.41개월을 기록했다.
실물경제의 침체가 예상보다 가속화하면서 정책 당국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날 공개한 경기평가보고서인 베이지북을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견고한 모습을 보였던 서비스와 에너지, 상업 부동산 산업 역시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소비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용시장은 초토화된 상태라고 연준은 평가했다. 기업들의 감원이 이어지고 임금이 대폭 깎이는 등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일자리가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금융권의 돈줄 죄기로 부동산시장에서 일반 주택 부문과 상업 부동산이 모두 악화되고 있다고 연준은 밝혔다.
전문가들은 오는 27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연준이 제로수준인 현금리를 고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연준이 연말까지 제로수준의 금리를 유지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연말 경기회복 낙관론도=한편 일각에서는 올 하반기 경기회복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신용위기 근원지인 모기지시장의 회복에 주목하고 12월 마지막주 모기지 신청건수가 2003년이후 최고 수준 기록했다는 사실에 고무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연준의 공격적 금리인하와 모기지담보증권(MBS) 매입 등으로 모기지 금리가 급락한 점도 주택시장에 청신호라는 평가다.
실제로 30년 만기 대출금리는 조사를 개시한 71년이후 가장 낮은 5% 수준에서 움직이고 있다.
리보금리가 급락하면서 기업들의 돈줄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는 사실도 긍정적이다. 지난 10월 4.81875%까지 치솟았던 3개월 리보는 최근 1.4%대로 하락했다.
달러 기근을 가늠할 수 있는 리보-OIS 스프레드도 1.23%로 축소됐다. 그만큼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용이해진 것이다.
증시 분위기도 개선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현재 머니마켓펀드에 3조7360억달러의 자금이 대기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