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유동성 확대, 한국경제 毒 될 수도

2008-03-17 18:08
弱 달러 원자재 가격 폭등 초래 물가상승·경상수지 악화 등 실물경제 타격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초래된 신용경색 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추가로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FRB가 시장에 달러를 더 풀면 달러 약세 현상이 심화돼 원유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도 더 오를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원가 부담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경제는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게 됐다.

◆ 시장에 넘쳐나는 달러=FRB는 16일(현지시간)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에 자금을 대출할 때 적용하는 금리인 재할인율을 3.50%에서 3.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재할인율을 인하하면 대출받을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나 유동성 확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대출기한도 종전 30일에서 90일로 연장했다.

이와 함께 FRB는 은행에만 개방했던 재할인 창구를 프라이머리딜러(PM)에게도 개방해 증권시장 참여자들이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경로를 넓혔다. 담보로 잡을 수 있는 채권도 정부 보증 채권에서 일반 채권으로 확대했다.

벤 버냉키 FRB의장은 "금융기관에 자금을 더 지원하기 위해 접근 기회를 확대했다"며 이번 유동성 확대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신용위기 확산을 막기 위한 고육책으로 유동성 추가 공급을 선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FRB는 18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기준금리를 1%포인트 가량 인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럴 경우 현재 3.00% 수준인 기준금리는 2.00%로 떨어지게 된다. 지난 7개월 동안 무려 3.25%포인트가 인하된 셈이다.

FRB는 지난 11일에도 28일 동안 일반 투자은행의 모기지 채권을 국채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2000억달러의 유동성을 시장에 공급한 바 있다.

올 들어 FRB가 초강력 유동성 확대 방안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이미 침체 국면으로 접어든 미국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다.

미국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현재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신용위기를 막을 수 없다는 게 미국 정부와 FRB의 판단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연내에 미국 기준금리가 1.00%까지 인하될 수 있다"며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일단 경기부터 살리기로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弱 달러에 신음하는 한국 경제=FRB의 거침없는 유동성 확대로 한국 경제는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발(發) 신용위기로 출렁이는 국내 금융시장은 FRB의 이번 조치로 진정 국면에 접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무조건 환영할 수도 없는 처지다.

시중에 달러가 넘쳐나면 달러 가치가 하락해 원유와 곡물, 금 등 대체자산으로 투자 수요가 몰리게 된다. FRB의 유동성 확대는 이미 불붙은 국제 원자재 가격 폭등세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원자재 수요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이미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지난 2월 수입물가는 전년동월대비 22.2% 오르며 9년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입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7.5%를 기록한 후 11월 13.7%, 12월 15.6%로 증가하다가 지난 1월(21.2%)에는 20%대로 진입하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 폭이 커지고 있다.

원가 부담은 그대로 소비자물가에 전가되고 있다. 지난 1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3.9%로 4%에 육박했다. 2월에는 3.6%를 기록해 오름세가 다소 꺾였지만 여전히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분은 1~2개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며 "달러 약세가 심화되면 국내 물가가 더욱 가파르게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달러 약세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면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향상돼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잃고 있다.

이광상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환율 상승이 수출 증진 효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은 일반론일 뿐"이라며 "산업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 수출은 기대만큼 늘지 않고 원가 부담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물가 상승으로 내수와 수출이 동반 위축될 경우 경상수지 적자가 고착화 될 수 있다.

국내 경상수지는 올해 1월 10년 만에 최대인 26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지난달에도 8억800만달러의 적자가 발생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물가마저 불안해지면 경제성장률 자체가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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