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ti의 과학향기]고추 먹으면 덥고, 박하 먹으면 시원한 이유
1997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세포·분자약학과 데이비드 줄리우스 교수팀은 ‘네이처’에 ‘캅사이신 수용체 : 통증 경로에 있는, 열에 의해 활성화되는 이온 채널’이란 논문으로 그 이유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말단을 조사해 신경세포막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이온 채널 단백질이 통증을 느끼는데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이온 채널 단백질은 TRPV1로 온도가 42℃가 넘거나 캅사이신이 달라붙으면 통로가 열리면서 세포 밖의 나트륨 이온(Na+)과 칼슘 이온(Ca2+)이 세포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그 결과 신경세포 내부의 전위가 바뀌면서 전기신호가 척수를 거처 대뇌로 전달돼 통증과 열을 느끼게 된다.
결국 고추를 먹으면 땀이 나는 것은 고추의 주성분인 캅사이신이 TRPV1을 자극해 열 신호를 대뇌에 전달함으로써 뇌가 열을 식히는 반응, 즉 땀이 나게 하기 때문이다.
한편 캅사이신은 열센서 가운데 TRPV1에만 달라붙고 나머지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 사실은 TRPV1이 없는 생쥐가 고추의 매운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지만 열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는 실험결과를 잘 설명해준다.이에 대해 2002년 열수용체를 발견한 줄리우스 교수팀과 또 다른 연구팀이 거의 동시에 TRPM8이라고 명명된 수용체를 발견했다.
채널 단백질인 TRPM8은 25℃ 이하에서 채널이 열리면서 신호를 전달하는데 온도가 낮아질수록 활성이 커진다. 흥미롭게도 박하의 주성분인 멘톨이 TRPM8에 붙으면 역시 채널이 열린다. 박하사탕을 먹거나 양치질을 하면 입안이 시원해지는 이유다.
향이 없는 캅사이신과는 달리 휘발성 분자인 멘톨은 청량감 있는 향이 난다. 따라서 면도 후 바르는 스킨이나 치약의 향료에 멘톨은 빠질 수 없는 성분이다. 현재 신경세포의 TRPV1이 열리지 않게 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글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