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장관들 'MB경제정책' 속도전
이명박 정부에서 통합부처로 거듭난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농수산식품부 등 경제부처들이 지난달 29일 장관의 취임과 함께 정책 추진과 발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새 정부의 우선 과제인 '경제 살리기'의 최전선에 배치된 경제부처 장관들은 대외 여건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경제를 살려 '7% 성장 능력'을 갖춰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의 침체 등 글로벌 경제에 암운이 드리운 가운데 물가 급등과 경상수지 적자 등 내부 악재가 겹쳐 새 경제팀의 운신을 힘겹게 하고 있다.
정부는 당장 물가고 때문에 서민 경제가 불안한 만큼 가장 먼저 생필품 인플레이션을 잡고 감세와 규제완화를 통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나서기로 했다.
◇ 기획재정부, 물가 잡기에 총력=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는 '물가 잡기'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급등에 따라 국내 물가는 거침없이 오르고 있고 새 정부가 국정방향을 성장 중심으로 잡아 물가 상승의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기 때문.
이명박 대통령이 첫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서민들의 물가고를 가장 걱정한 만큼 강만수 장관의 최우선 임무는 물가 대책이다.
강 장관도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수입물가가 21%나 올라간 상황은 우리의 한계를 넘는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물가 대책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해서 국민에게 솔직히 밝히겠다"며 "할 수 있는 일은 유류세를 인하하고 공공요금을 경영합리화를 통해 인상을 최대한 자제하는 한편 농수산물의 유통구조를 개선해서 낮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3일 새 내각과 처음으로 갖는 국무회의에서 기획재정부는 유류세 인하를 위한 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제출한다.
강 장관은 물가 대책과 동시에 "새로운 관점에서 조세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됐다"면서 대대적인 세제개편도 서두르기로 했다.
'감세론자'인 강 장관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정부의 지원이 금지되면서 세계 각국이 세금을 낮추는 '조세경쟁(Tax Competition)' 시대에 들어섰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대외경쟁력 강화를 위해 저세율이 유리하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우선적으로 현행 25%인 법인세를 20%로 낮추기로 하고 5년동안 매년 1%포인트 낮추는 방안과 2단계에 걸쳐 5%포인트를 낮추는 방안을 조만간 최종 확정할 방침이다.
◇ 지식경제부, '전봇대 뽑기' 올인=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 역시 다른 부처 장관들과 마찬가지로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우선순위에 오른 것은 기업규제 완화와 중소기업 지원책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운 새 정부에서 지식경제부에 기업 도우미 역할이 주어졌지만 대부분의 규제, 특히 기업들이 시급하게 원하는 수도권 규제와 토지이용규제, 환경관련 규제 등은 대부분 지식경제부의 소관이 아니다.
지식경제부로서는 시급히 없애야할 규제 리스트를 만들어 타당성 검토를 거친뒤 다른 부처들에 해당규제의 철폐나 완화를 요구해야 한다.
새 정부가 지나치게 대기업 편향이 아니냐는 의심을 떨쳐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획기적 중소기업 지원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도 우선적 과제다.
지식경제부는 우선 여러 부처에 다양한 형태로 분산돼 효과가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온 중소기업 지원체계의 대수술을 시작으로, 3월 중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정부.대기업 공동출자 벤처캐피털 설립 태스크포스를 만들기로 하는 등 이미 일정표를 짜둔 상태다.
이들 정책적 과제뿐 아니라 뚜렷한 해결방향이 나오고 있지 않은 이라크 유전개발문제도 이 장관이 나서야 할 현안이다.
지난해 맺어진 바지안 광구 계약에 이어 대통령직 인수위가 주도한 쿠르드지역 4개 광구 개발 양해각서(MOU)에 대해 이라크 정부가 일체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한 이라크산 원유공급 중단이 벌써 두 달을 넘기고 있는데다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경우 이라크 중앙정부에 제출한 석유공사와 SK에너지 등 국내 기업들의 유전개발 신청도 받아들여지기 어려워 자칫 한국 자원외교의 치명적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마저 배제하기 힘들다.
지식경제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라크 석유개발 문제가 이 장관의 능력을 검증하는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농수산부는 '쇠고기 문제'= 정운천 농수산식품부 장관에게 떨어진 발등의 불은 농번기를 앞둔 사료값 비료값이다. 곡물.원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에 사료.비료 값도 뛰어 농업인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농수산식품부는 우선 지난달 초 인수위가 발표한 특별지원 대책에 따라 사료 구매자금 지원이 이달 초중순부터 실제로 이뤄질 수 있도록 서두르고 있다. 지난달 중순 농협 등을 불러 지원 기준을 논의했고, 기획예산처, 재경부 등과 현재 예산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실무자들은 신임 장관이 취임한 만큼 재원 협의를 서둘러 마치고 곧 시행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수위는 지난달 초 사료값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양돈.한우 농가에 1조원 규모의 사료 구매자금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정부가 연 3%, 상환기간 1년 등의 좋은 조건에 사료 살 돈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여기에 현재 7개 주요 사료용 원료 곡물의 할당관세를 하반기부터 0% 수준까지 낮추는 방안, 올해 말로 끝나는 배합사료 부가가치세 영세율 시한을 2011년까지 3년 연장하는 방안 등도 추진된다. 비료의 경우 현행 17% 수준인 유기질 비료 구입비 보조율을 30%까지 인상할 방침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엮여 양국 간 최대 통상 현안으로 떠오른 '쇠고기 문제'도 정 장관이 풀어야 할 숙제다.
현재 미국 행정부 및 국회 고위인사들은 연일 쇠고기 전면 개방을 한미FTA 비준 동의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어 우리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사상 최대 규모의 쇠고기 리콜 사태로 미국의 검역 부실 문제가 도마에 올라있는데다, 4월 총선까지 앞두고 있어 우리 정부로서도 쉽게 문을 열어주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한미FTA를 지지하는 이명박 정부가 취임 초기 3~4월께 전격적으로 미국이 주장하는 '연령.부위제한 없는 수입' 조건을 받아들여 비준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 공정위, 출총제 폐지 서두른다=공정거래위원회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최우선 과제로 우선 법 개정을 통해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출총제는 그동안 재계로부터 기업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인 '불필요'규제로 공격을 받아왔고 인수위 업무보고를 통해 폐지가 확정된 만큼 이를 폐지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이 시급한 과제로 부상한 상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출총제 외에 채무보증제한이나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 대규모 기업집단에 적용되는 여타 규제들을 한꺼번에 풀 것인지 여부와 출총제 폐지 이후 재벌 폐해를 사후 감시할 대안을 마련할 것인지 여부가 관심사다.
공정거래법 개정 추진과정에서는 출총제 폐지와 함께 결정된 지주회사 요건 완화 방안도 함께 반영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규제완화 방침에도 불구하고 공정위는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맞춰 대.중소기업 상생과 관련해 대기업의 계열사 편법지원이나 중소 하도급 업체에 대한 감시는 강화해나갈 방침이다.
또 대형 유통업체가 입점업체나 납품업체에 부당한 거래조건을 강요하는 행위나 대형 프랜차이즈(가맹점)업체의 횡포 등에 대해서도 피해 예방을 위한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새 정부가 출총제 폐지 외에도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한 감시 강화 등을 추진키로 했으므로 관련 업무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