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의 베트남 포커스] (33) 푸꾸옥과 꼰다오: 옥빛 바다에 품은 역사의 비극

2024-12-20 06:00
외세와 독재에 맞선 이들의 핏자국에 눈이 시린다

[이한우 단국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
 
베트남의 푸꾸옥 섬이 한국인들 사이에 인기 있는 여행지로 부상했다. 푸꾸옥이 아시아의 섬 가운데 톱텐에 올랐으니 그럴 만하다. 푸꾸옥은 인도네시아 발리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태국의 코 사무이, 푸켓이 이 뒤를 이었다. 영국 여행 잡지 <콩드 내스트 트래블러 Condé Nast Traveler>가 독자들을 대상으로 2024년에 투표한 결과다. 어떤 이는 푸꾸옥을 ‘베트남의 몰디브’라고도 하는데, <트래블+레저> 잡지가 푸꾸옥을 몰디브 다음으로 꼽았다. 한편 외국인들에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주목할 만한 섬이 꼰다오 군도다. 이는 꼰선 섬과 주변 작은 섬들로 구성되는 군도인데, 그냥 꼰다오 섬이라고도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에는 꼰다오를 풀로 꼰도르(Poulo Condor)라고 했다. 푸꾸옥은 캄보디아 남쪽 바다에 있는데, 꼰다오는 호찌민시로부터 남쪽 바다에 있다.
 
 
[푸꾸옥의 옥빛 바다, 고운 모래사장과 푸른 하늘. 사진=이한우]

 
- 푸꾸옥과 꼰다오가 베트남의 섬이 되다
 
베트남 남부 지역은 오래 전에 캄보디아 땅이었다. 동남아 역사는 15세기에 큰 변화를 겪는데, 밀턴 오스본이라는 동남아 연구자는 그 이전 시기를 고전 시대라고 했다. 이 고전 시대에 동남아에서 가장 융성했던 국가가 지금의 캄보디아다. 캄보디아의 초기 국가는 푸난, 쩐라, 앙코르 등으로 이어졌고 동남아 최강국의 지위를 누렸다. 앙코르 왕국은 15세기 이후 쇠락했는데, 캄보디아는 동쪽의 베트남과 서쪽의 태국 간 각축장으로 변했다. 캄보디아는 17~18세기에 동남부, 즉 지금 베트남의 남부 지역을 베트남에 빼앗기게 된다. 베트남은 1698년에 지금의 호찌민시와 비엔호아 지역을 베트남 땅으로 귀속시켰다. 이 사건이 베트남의 남부 진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베트남의 영토 확장은 남부로 향했고 현재 베트남 영역에서 가장 남서부에 있는 하띠엔(Ha Tien) 지역에까지 미쳤다. 중국 명나라 사람 막구(鄚玖)가 청나라를 거부하고 1680년부터 캄보디아의 싸이맛이라는 지역에 정착하자, 캄보디아 왕은 그를 관리로 임명했다. 막구는 싸이맛을 개발하고 유민을 모집하여 푸꾸옥을 포함한 7개 지역으로 구성된 하띠엔을 세웠다. 1708년에 캄보디아 정세가 불안정하자 막구는 당시 베트남 후레(Le) 왕조 하에서 남부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응우옌씨 집단에 복속했고, 응우옌씨는 막구를 하띠엔의 총병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푸꾸옥 섬도 베트남 영토로 편입됐다.
 
꼰다오 군도는 가장 큰 꼰선(Con Son) 섬과 몇 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다. 꼰선은 한자로 곤산(崑山) 또는 곤륜산(崑崙山)으로 표기된다. 곤륜은 옛 중국 기록에서 문헌에 따라서는 다른 지역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 지역이 베트남 남부에 가까운 곳이니 오래 전부터 베트남 어선들이 들락거렸을 것이다. 16세기 이전까지 현 베트남 중남부에 참파라는 나라가 있었으니, 참파 어부들이 그곳에 다녀오곤 했을 것이다. 남은 기록은 없다. 꼰다오가 서방에 알려진 것은 1516년 포르투갈인들이 오면서부터다. 이후 17~18세기에 프랑스 및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이 섬에 진출해 성채를 쌓기도 했는데, 결국 19세기에 프랑스가 지배하게 됐다.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하며 이 섬은 자연히 베트남 영토에 속하게 됐다. 베트남인들이 오래 전부터 다녀갔을 테니, 꼰다오가 프랑스 덕분에 베트남에 속하게 됐다고 할 수는 없다.
 

- 전쟁을 겪어낸 두 섬
 
푸꾸옥, 꼰다오 두 섬이 닮은 점은 옥빛 바다, 고운 모래로 덮인 해변뿐만이 아니다. 전쟁을 겪으며 모두 포로수용소로 쓰였다는 점이다. 이들을 보면 영화 <빠삐용>이 생각난다. 꼰다오 섬에는 일찌감치 1862년에 프랑스 식민지배에 저항하던 베트남 민족운동가들의 수용소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프랑스는 1858년 베트남을 침공하기 시작하여 1862년에 남부의 일부 지역을 빼앗고 1883년에 전국을 지배하에 둔다. 이후 프랑스는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포함하는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을 수립한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는 1945년까지 가는데, 베트남이 9월에 독립을 선언했지만 프랑스가 이를 인정하지 않아 1946년 말부터 전쟁을 치르게 된다. 이것이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이다. 베트남이 1954년 5월 디엔비엔푸 대격전에서 승리한 후 7월에 제네바협정을 체결하면서 프랑스의 식민지배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프랑스 식민지 시기 건설된 꼰다오 감옥. 사진=이한우]

프랑스 식민지배자들은 베트남 민족혁명가들을 꼰다오 감옥에 가뒀다. 판보이쩌우와 함께 20세기 초 베트남의 양대 사상가이자 민족운동가였던 판쩌우찐(판쭈찐)도 그중 한 명이다. 판보이쩌우는 폭력 저항을 통한 입헌군주제를 추구했으나, 판쩌우찐은 비폭력 자강운동을 통한 군주제 철폐, 공화제 수립을 추구했다. 그는 1907년 하노이에서 동경의숙 설립에 기여했다. 일본의 게이오(경응) 의숙을 모범으로 삼았다. 동경의숙의 동경은 일본 동경을 동경해 붙인 건 아니다. 과거에 하노이를 동낀(Dong Kinh, 동경)이라고 부른 적이 있고, 당시 베트남 북부 지역을 통킹(Tonkin)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1908년 농민 봉기 이후 동경의숙은 강제로 문을 닫고 말았지만 이로써 지방에서 교육운동이 널리 퍼졌다. 판쩌우찐은 체포돼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종신형으로 감해지고나서 꼰다오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는 3년간 감옥 생활 끝에 1911년 석방된 후 가택연금에 처해졌다. 그 외에도 꼰다오 감옥을 거쳐간 민족운동가는 수없이 많았다. 수많은 공산 계열의 민족혁명가들도 꼰다오에 수감됐다. 레홍퐁, 똔득탕, 팜반동, 레주언, 레득토, 팜훙, 응우옌반린 등 이름을 들어봤을 인물들이다.
 
 
[푸꾸옥 감옥. 사진=이한우]

1954년에 베트남이 남북으로 분단된 후 1960년대 중반부터 열전으로 치달은 베트남전쟁 때는 꼰다오만이 아니라 푸꾸옥섬에도 남베트남 반정부 인사들의 수용소가 설치됐다. 이 반정부 인사 중에는 공산주의자도 있었고 공산 계열이 아니면서 남베트남 정부의 독재에 저항한 민족주의자, 즉 제3세력 인사들도 있었다. 1954년 분단 이후 남베트남은 응오딘지엠 정부와 쿠데타 이후 응우옌반티에우 정부가 통치했다. 모두 권위주의 정권이었다. 철망으로 닭장 같은 것을 만들어 포로들을 가두었던 푸꾸옥 수용소의 타이거 케이지가 당시 험악했던 상황을 말해준다.
 

- 한국의 제주와 닮은 두 섬
 
푸꾸옥과 꼰다오는 다른 이유로 눈이 시린 곳이다. 한국의 제주처럼 맑은 햇살과 푸른 바다를 지녔으면서 전쟁의 슬픔을 간직한 섬이기도 하다. 제주 4·3사건처럼 주민이 학살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전쟁의 상흔을 안고 있다. 프랑스에 저항한 민족운동가들의 피가 묻어 있고, 독재정권에 항거한 인사들의 한이 서려 있다.
 
[푸꾸옥의 베니스. 사진=이한우]
 
이제 푸꾸옥은 개발이 많이 진행돼 관광지로서 면모를 잘 갖췄다. 베트남에서 가장 큰 민간기업인 빈(Vin) 그룹이 대규모 단지에 리조트와 놀이 시설, 관람 시설 등을 설비했다. 이를 벗어나 한적한 호텔에 머물며 해변에서 푸른 하늘로 솟은 야자수를 보며 수영하는 재미도 좋다. 자연환경 탓에 산호가 예쁘지 않아 스노클링의 재미가 적어 아쉽긴 하다. 남쪽에는 선(Sun) 그룹이 7.9㎞ 길이의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 케이블카를 설치해 놨다. 케이블카를 타고 넓은 바다를 내려다보면 가슴이 쫙 펴지는 듯하다. 한편으로 꼰다오는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잦지 않아 생태 관광지로서 좋은 곳이다. 공항이 작아 ATR-72 프로펠러 비행기로 가거나 배로 가야 한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서는 원숭이들이 방문객을 반긴다. 가장 큰 꼰선 섬 인근의 작은 섬들은 거북이 서식처로 알려져 있다. 새끼 거북을 방류하는 일에 참여할 수도 있다. 새끼 거북을 방류하는 투어가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어서 꼰다오에서 하룻밤만 머물러서는 이 일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 이제 천혜의 자연 자원을 가진 이 두 섬이 과거의 상흔을 벗고 새로운 명소로 재탄생했다. 과거의 비극을 잊지는 않지만 이를 극복해낸 제주처럼 말이다. 역사의 상흔을 기억하는 일은 관련 연구자에게 맡겨두고 푸꾸옥과 꼰다오의 옥빛 바다와 파란 하늘을 즐기는 것도 좋겠다.

 
필자 주요 약력
서강대 정치학박사,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대학원 동남아시아학 협동과정 교수 역임, 한국-베트남 현인그룹 위원 역임. 현 단국대 아시아중동학부 베트남학전공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