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트럼프의 방위비 압박 조선 카드로 돌파하자

2024-12-18 16:18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지난달 트럼프 당선자와 윤석열 대통령 간 처음 전화 통화에서 트럼프 당선자가 한국 조선산업의 우수성을 언급하고 한미 간의 조선협력을 제안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미 대통령 당선자가 우리 정상과 첫 통화에서 제기한 문제는 미국의 중요 관심 사안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이 문제를 우리는 잘 검토해서 미국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우리 국익을 증진시킬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정상 차원에서 제기한 것은 처음이지만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기 시작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세계 패권국의 지위가 변경되는 데 가장 중요한 선행지표는 해군력의 쇠퇴를 꼽을 수 있다.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은 모두 강력한 해군을 가진 국가였다. 이들은 자국의 해군력을 바탕으로 세계 무역로를 장악하면서 세계 최고국가의 지위를 유지한 적이 있었다. 한때 패권국이었지만 이들 국가의 해군력이 쇠퇴하면서 이에 도전하는 국가와 해전이 벌어지고 이 전쟁에서 지면 그 패권국은 결정적으로 쇠락하였다. 그 전쟁에서 이긴 국가는 새로운 패권국으로 등장하는 과정이 역사적으로 반복되었다.
 
지금의 패권국인 미국도 1925년 ‘워싱턴 군축회의’라는 당시 열강의 해군력을 조정하는 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고 세계 최고의 해군국으로 올라섰다. 이런 해군력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를 만들고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 후 지난 백여 년 미국은 11개의 항모전단을 필두로 6개 함대로 전 세계 해양을 사실상 지배하였다. 물론 태평양지역은 7함대가 관할하면서 막강한 해상 전력으로 이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다.

그런데 최근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면서 축적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국 조선산업을 세계 최대 규모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이런 조선산업을 바탕으로 중국은 10개 조선소에서 최근 한 해 수백 척의 크고 작은 해군 함정을 거푸집에서 찍어내듯 생산해 내고 있다. 반면 미국은 항공모함이나 핵잠수함을 제외한 일반 전투함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가 이제 겨우 서너 군데 남아있는 실정이다. 그나마 이 조선소에서 연간 건조할 수 있는 함정 수가 최대 7척에 지나지 않는다.
 
그 결과 미국이 보유한 전투함 수와 중국이 보유한 전투함 수는 점차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현재 미국이 보유한 전투함은 285척 정도인데 중국이 보유한 전투함은 340척에 달한다. 지금도 많이 벌어진 격차가 앞으로는 가속도가 붙어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미국이 항모전단에서는 중국에 비해 외견상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도 조만간 6개 항모전단을 배치할 계획을 가지고 이를 추진 중이다. 그나마 있는 미국의 항모전단도 노후화가 진행되어 자주 수리를 받아야 되는 형편이어서 실제 동원 가능한 항모는 제한된다. 게다가 중국의 해군은 중국 연안을 따라 집중 배치되어 있지만 미국 해군은 전 세계에 분산 배치되어 있다. 남중국해나 대만해협에서 양국 해군 간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미국의 우위를 전혀 장담할 수 없는 실정이다.
 
사실 미국의 해군대학 등은 몇 년 전부터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해군 간에 해전이 벌어졌을 경우를 가정한 전쟁 시뮬레이션을 여러 차례 실시해 오고 있다. 미 해군대학이 행한 시뮬레이션은 미국 해군이 중국 해군에 패배하는 것으로 자주 결론이 났다. 미 국방부가 미국 정책연구소인 CSIS 등과 합동으로 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전제로 한 전쟁 결과 예측연구인 ‘다음 전쟁의 첫 번째 전투’가 있다. 이 연구에서도 미국과 일본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간신히 막아내긴 하지만 미군의 피해도 막심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런 시뮬레이션 결과는 미국 해군의 양적인 열세에다 중국의 미사일 공격능력의 우위를 반영하였기 때문이다.
 
더 벌어지는 미·중 간 해군력 격차를 알고도 미국이 이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별로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실 미국의 조선업은 그 생태계가 무너져 지금 이를 재건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조선소들도 그 설비와 시설들이 노후화되어 생산성을 발휘하기가 힘들다. 함정 건조에 필요한 기자재와 부품을 공급할 공급망도 많이 약화 되었다고 한다. 겨우 존재하는 협력업체에서 기자재와 부품을 조달한다 해도 그 제품의 품질이 낮고 그 가격도 우리 조선업계에 비해 5배나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근로자들의 기술 숙련도와 공정 자동화율이 낮아 공정 진척이 매우 느려 같은 함정을 만드는 데 우리의 모듈화된 건조 방식보다 기간이 4배 정도는 더 걸린다고 한다. 이러니 한정된 국방예산을 가지고 미국 내 군함을 건조한다면 중국과 경쟁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이러한 미 해군력의 약화는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될 뿐 아니라 미국의 심각한 안보위협으로 대두하게 되었다. 그래서 트럼프 당선자도 이를 제일 급한 일로 생각하고 우리에게 협력을 요청한 것이다. 트럼프 당선자가 이를 요청하기 전에 이미 그의 장남을 비롯한 미 국방성 관리들과 해군 장성들이 최근 우리 조선소를 둘러보고 우리 군함의 우수성을 직접 확인한 바 있다. 이런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건의가 올라갔고 트럼프 당선자가 이를 토대로 윤 대통령에게 협조를 요청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미국의 요청을 어떻게 받아들여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할지 고민할 때이다.
 
우리의 동맹이자 안보의 보장자인 미국이 자국 안보와 지역 안정을 위해 이런 요청을 해왔다면 동맹으로서 우리는 미국을 도울 의무가 있다. 그리고 미 해군력의 약화를 방지하는 것이 우리의 국익에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미국의 군함을 우리가 건조하게 되면 우리의 경제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우리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게 된다. 조선 협력은 우리 외교에 써먹을 지렛대가 생기는 셈이기에 우리는 미국 요청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 우리의 조선능력을 감안하면 한 해 10척 안팎의 중형 전투함을 건조하여 미국에 인도할 수 있고 또한 미 해군함정의 유지·수리·개조(MRO)사업도 우리가 맡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력이 있다면 우리가 필리핀, 베트남과 같이 남중국해 자유항해를 중요시하는 국가들의 해군력 증강을 도와줄 수 있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더욱 고마울 것이다.
 
우리가 미국과 해군 재건사업에 협력을 하게 된다면 이를 미국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방위비 증액 요구에 대해서도 활용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트럼프 당선자는 방위비 명목으로 우리에게 100억 달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니 올해 우리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와 타결한 ‘방위 분담금 협정’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의 주장대로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려 해도 현 방위 분담금 협정의 테두리 안에서 몇 배를 증액해서 줄 수도 없는 제약이 존재한다. 현재 방위 분담금 협정(SMA)에 따르면 우리가 지불하는 항목이 군사 건설비, 한국인 근무자 인건비, 군수 지원비 3가지 항목으로 정해져 있다. 이 항목에 따라 우리가 거의 전액을 다 부담한다 해도 그 총액은 2조를 넘어서지 않는 수준이다. 현재 1조5000억 정도를 우리가 부담하고 있으니 증액한도는 5000억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니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우리에게 대폭 증액된 방위비를 받아내기 위해서는 주한미군 운용비나 전략자산 전개비용을 청구하는 별도 협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비용은 우리가 그 내역을 잘 알 수도 없어 미국이 청구하는 대로 지불해야 하는 난점이 있다. 미국 청구하는 대로 다 지불하면 국내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한·미 간의 갈등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해 납품한다면 이 건조 비용을 미국이 요청하는 방위비와 상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미국 방식으로 전략자산 전개 비용을 계산하면 우리도 미국 내 건조 군함가격으로 우리 군함 가격을 매겨서 미국에 납품하면서 상계를 요구하면 양국간 마찰 소지도 미리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당연히 우리의 현금지불 방위비용도 상당히 감액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동맹국 관계에서도 많은 변혁을 추구할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변혁의 파고는 거셀 것이고 요구는 강할 것이다. 이에 우리가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하면 한미동맹에 파열음이 생기고 우리 안보에도 좋지 않을 것이다. 반면 이를 슬기롭게 잘 풀어나가면 한미동맹에도 좋고 우리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분야가 바로 양국간 조선협력 사업이 될 수 있다. 트럼프가 내민 손을 우리는 꽉 붙잡아야 할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