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명분 없는 비상계엄, 이젠 尹대통령 책임 물을 시간

2024-12-04 07:42

[유창선 시사평론가]



“솔직히 말해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일을 마음먹은 것이 기괴한 일이다. 누구도 그를 설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CNN은 서울에 있는 존 닐슨 라이트 케임브리지대 조교수와 인터뷰하면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가 ‘기괴한 일’임을 세계에 알렸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윤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조치는 많은 한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1980년대 후반 민주주의로 이행하기 전 한국의 군부 통치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고 보도했다.

한마디로 세계적 망신이다. 윤 대통령이 3일 심야에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령은 민주주의를 하고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생각하던 국민의 자부심에 찬물을 끼얹은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군 병력을 동원하여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대통령이 나타나다니. 12·12 군사반란과 5·18을 겪었던 세대들에게는 과거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든 6시간이었다. 그런 역사를 겪지 않았던 세대들에게는 특전사 무장 군인들이 국회 본청에 난입하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역사의 시계를 1979~1980년으로 되돌려버리려 했으니 말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주도하고 있다”고 비상계엄령 선포 이유를 밝혔다. “가능한 한 이른 시간 내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이 대부분의 참모들도 모르게 갑자기 계엄령을 선포한 것은 정기국회에서 빚어지고 있는 일련의 상황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은 예결위에서 정부 제출안 대비 4조1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삭감했다. 특히 대통령실과 검찰, 경찰 등의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를 전액 삭감하는 ‘예산 보복’을 했다. 게다가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안 처리를 예고했다. 그러나 이는 정치적 갈등의 문제이기에 어디까지나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이라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법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비상계엄이었다. 우리 헌법은 전시나 사변 같은 국가비상사태에 있어 군 병력으로 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여야 간 극한적인 정치적 갈등이 있다고 해서 지금이 계엄 선포 요건에 해당되는 상황이라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계엄사령부는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는 내용 등이 담긴 포고령 제1호까지 발표했지만 그 내용 또한 위헌적이다. 아무리 비상계엄 아래에서도 계엄사령부가 국회의 활동을 금할 수는 없다. 그런데 비상계엄 선포 직후 경찰 병력이 국회의원들의 국회 출입을 봉쇄하는 일이 있었고, 군 병력이 국회 본청에 난입하는 일이 자행되었다.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을 비롯해서 계엄을 건의했다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 그리고 위법적인 계엄 모의 가담자들의 내란죄 여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특전사 병력이 국회 본청에까지 난입하는 상황에서도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채택된 상황이다. 여기에는 야당 의원들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한 일부 의원들도 참석하여 계엄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로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까지도 계엄에 반대하고 철회를 요구하는 입장에 섰으니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가 얼마나 터무니없고 무리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자 선포 6시간 만에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해제를 선언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새벽 담화에는 여전히 야당에 대한 불만만 담겼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들을 잠 못 이루게 한 데 대한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군을 동원하여 자신의 뜻을 관철하겠다는 군사독재 시대의 사고를 가진 대통령이 그 자리에 있는 한, 언제 또다시 그런 망상에 빠질지 알 수 없다. 윤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하야 선언을 하는 것이 국민과 민주주의에 대한 도리이다. 대통령직을 더 이상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을 자초한 것은 윤 대통령 자신이다. 스스로 사퇴하지 않는다면 여야 정파를 넘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추진하는 일이 필요하다. 일단은 군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직의 권한을 정지시키는 일이 급해 보인다. 그리고 이번 일이 내란죄에 해당되는지에 대한 특검 수사의 필요성도 국회가 논의할 필요가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할 일이다. 

군을 동원하여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정권을 유지하려는 행위에 대해서는 무겁고 엄정한 대응이 절실하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 모의를 하는 세력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를 제대로 채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나라의 불행이지만, 스스로 자초한 길이니 도리가 없다. 이제는 윤 대통령과 비상계엄에 가담한 인사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시간이다. 3일 밤 우리는 참으로 부끄러운 밤을 지새웠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