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K-행동주의'③] 소액주주들, 행동주의펀드 환영 … "다만 소통 필요해"

2024-12-03 05:00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받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 얼라인파트너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 환영…주총 앞두고 연대
행동주의펀드의 개입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 여전
KCGI, DB하이텍 엑시트…소액주주들 검찰에 기소

[사진=두산에너빌리티 주주연대]
 
<편집자주>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고려아연, 두산밥캣 등 지배구조 개편이 있을 때면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참전해 새로운 형태의 'K-행동주의'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국회의 상법 개정 논의와 맞물려 행동주의 펀드 캠페인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액주주 권리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지금, 진화하는 K-행동주의를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코노믹데일리] 행동주의 펀드는 2021년부터 활동이 활발해졌다. 1년 전 주주대표소송제도 개선,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임제 등의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이 이뤄진 직후다.

이후 시장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다. 1~3% 가량의 주식을 매입해 소액주주로서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는 국내 행동주의 펀드 덕에 소액주주들의 권익이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하면 주가가 오르니 소액주주들이 아예 개입을 원하는 경우도 생겼다. 

부정적 시선도 있다. 투자금 회수가 목적인 만큼 행동주의 펀드는 원하는 목표만 달성하면 소액주주 의사나 피해는 고려하지 않고 매입한 주식을 팔아 치운 뒤 쉽게 떠났다(이코노믹데일리 11월 28일자 B1·B2면 참고).

가치투자연구소 김태석 매니저는 이런 행동주의 펀드를 '메기'로 표현했다. 막강한 포식자는 취약한 경쟁자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가설에 등장하는 포식자가 '메기'다. 바로 '메기 효과'다.
 
김 매니저는 2일 “행동주의 펀드는 물 속의 메기 같은 존재다. 물고기들이 있는 생태계, 즉 시장을 건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헐값 합병, 상장 폐지 등으로 대주주만 유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소액주주는 행동주의 펀드를 지원군이라 봤다.

이런 점에서 메기의 역할을 한 대표적인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얼라인파트너스다. 소액주주와 연대해 국내에서 불가능할 거라 여겨지던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을 이뤄냈다. 얼라인은 2022년 SM엔터테인먼트 지분을 매입해 사외이사 비율을 확대하는 등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했고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받아 표 대결에서 이겼다.

얼라인이 두산밥캣 지분 1% 매입했을 때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들이 환영의 뜻을 전한 이유다. 
소액주주 플랫폼인 액트연구소 윤태준 소장은 “행동주의 펀드를 든든한 원군으로 생각한 소액주주들은 얼라인이 자신들을 도와주러 왔다는 생각에 크게 기뻐했다"며 "주주들 입장에서는 1% 지분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은 지난 7월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떼어내 두산로보틱스로 편입시키려는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 방안이 발표된 뒤 거세게 반발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알짜 자회사인 두산밥캣을 '헐값'에 팔아치우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얼라인은 지난 10월 두산밥캣 지분 1%를 확보하고 두산의 지배구조 개편에 항의하는 등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들과 일치된 행보를 보였다. 최근엔 두산에너빌리티에 두산밥캣 매각을 시장 입찰을 통해 진행하라고 요구했다.

현재 얼라인은 오는 12일 주총을 앞두고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에 나서며 소액주주 결집을 도모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연대를 목표로 만들어진 행동주의 플랫폼 컨두잇도 소액주주 결집에 나섰다.

하창주 두산에너빌리티 주주연대 대표는 “(행동주의 펀드가) 소액주주 측에서 행동하는 부분을 좋게 평가하는 의견이 있다”며 “포괄적 주식교환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대주주와 반목한 상태라 지금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도 “합병 저지라는 궁극적인 목적이 같아 소액주주들 입장에서는 우호적”이라며 “종목토론실을 보면 소액주주들은 두산 합병에 부정적이고 얼라인 행보를 지지하는 입장이 있다”고 전했다.
 
 
'메기'의 부정적 역할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경고도 존재한다. 포식자 메기의 등장으로 약자인 미꾸라지가 처음엔 살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다가 결국 산소 부족과 에너지 고갈로 죽어가듯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생태계를 망치고 피해는 소액주주에 떠넘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는 “두산이 지금까지 기업을 일궈온 것도 있고 기업 내 복잡한 상황도 있을 것"이라며 "얼라인 개입과 관련해서도 기업의 사정을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투자금을 회수하는 게 목적인 행동주의 펀드의 ‘엑시트(탈출)’ 가능성을 두고도 비판이 상존한다.

익명을 요청한 전문가는 “한국 행동주의 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항상 지적되는 문제”라며 “펀드는 결국 수익률이 얼마나 났는지 평가를 받아야 하니까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다 이뤄지지 않았어도 주가가 오르면 투자자 요구에 따라 탈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명 ‘강성부 펀드’로 불리는 토종 행동주의 펀드 KCGI는 DB하이텍의 지배구조 개편을 이루지 못한 채 지분을 DB하이텍의 지주사 격인 DB 아이엔씨(Inc)에 매각하고 나갔다. 이에 소액주주들은 최근 KCGI를 '먹튀'로 검찰에 고소한 상황이다.

이상목 DB하이텍 주주연대 대표는 “DB하이텍 주가가 5만8000원일 당시 DB는 KCGI 지분을 이보다 비싼 6만6000원에 샀다"며 “DB 주주 입장에서는 자신들 경영권 지키려고 주주들 돈을 함부로 쓴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동주의 펀드가 소액주주들과 소통하며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소액주주들에게 엑시트해도 되냐고 물어보고 합의를 이룬 뒤 공시를 했다면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라며 “행동주의 펀드의 문제는 미리 얘기를 안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