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열장서 나온 '외규장각 의궤'…"페이지 넘겨볼까"
2024-11-15 00:14
디지털책 한장 한장 넘기며 보는 재미
도설 아카이브 터치하면 쓰임새도 생생하게 제시
도설 아카이브 터치하면 쓰임새도 생생하게 제시
"나는 생을 마감했다. 내 아들 세자는 임금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책의 페이지를 넘기자, 조선의 17대 왕 효종(재위 1649~1659)이 말했다.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의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를 떠올리게 할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 책은 디지털북 <효종이 읽어주는 발인반차도>다.
디지털북은 <효종이 읽어주는 발인반차도>, <어람용과 분상용 의궤 비교>, <한 권으로 읽는 의궤> 총 3권이다. 책 받침대에 미니북을 올려놓으면, 디지털책이 활성화된다. 디지털책은 왼쪽으로 한장, 한장씩 직접 넘길 수 있게 구현돼, 마치 진짜 의궤를 보는듯한 몰입감을 준다. 들춰 보고, 눌러볼수록 다양한 의궤 속 기록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특히 <효종이 읽어주는 발인반차도>는 효종이 죽은 후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다. 효종이 죽음을 맞이한 뒤, 본인의 삶과 장례행렬이 담긴 발인반차도의 내용을 효종 본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독특한 구성이다.
<어람용과 분상용 의궤 비교>는 왕에게 올리는 어람용 의궤와 기관 보관용 분상용 의궤의 차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구성됐다. 표지, 변철, 제목 표기 등 모든 면에서 격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외규장각 의궤실 조성을 담당한 김진실 학예연구사는 “조선왕조 의궤가 중요한 기록 문화라는 것은 알지만 내용 접근이 어렵다”며 “일반 국민, 청소년 등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을 연출하는 것을 전시 방향으로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의궤 속 흥미롭고 교육적인 내용을 통해 (디지털북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4.8미터에 달하는 대형 디스플레이로 구성된 도설 아카이브에서는 외규장각 의궤에 담긴 도설 그림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도설은 행사에 쓰이는 물품의 모양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의궤 속에 그린 그림이다. 각 도설을 터치하면 해당 물품의 소개와 함께 행렬에서 사용된 모습 등도 상세히 볼 수 있어, 실제 쓰임새를 파악할 수 있다.
전시실은 디지털 서고 외에도 외규장각 의궤의 고초를 상징하는 ‘책이 있는 옷, 책의’를 비롯해 어람용 의궤를 감상할 수 있는 ‘왕실의 위엄, 만세의 모범’, 왕실의 결혼의식인 가례와 장례의식인 흉례의 전체적인 틀을 볼 수 있는 ‘조선 왕실 의례’ 등으로 구성된다.
한편, 외규장각은 강화도에 왕실 기록물을 보관했던 곳으로, 규장은 임금의 글과 글씨라는 뜻이다. 외규장각 의궤는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에 의해 무단 반출됐다. 100여 년이 지난 뒤 고(故) 박병선 박사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노력 끝에 2011년 외규장각을 떠난 지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년에 4회 교체전시를 통해, 연간 32책을 공개할 예정이다. 외규장각은 총 297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