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돋보기] 이준혁, '주인공'이 된다는 건

2024-11-12 07:00

하루에도 수십 개의 노래, 수십 개의 작품이 탄생한다. 음악·드라마·영화 등이 수없이 많은 매체를 통해 소개되고 있지만 대중에게 전해지는 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노래를 부르고, 연기한 아티스트도 마찬가지. 뛰어난 역량에도 평가 절하되거나, 대중에게 소개되지 못하는 일도 빈번하다. '아티스트 돋보기'는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를 소개하고 그들의 성장을 들여다보는 코너다. 아티스트에게 애정을 가득 담아낸 찬가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 스틸컷 [사진=티빙]

"이런 마음이었구나. 좋은 자리에 중심이 된다는 것. 주인공이 된다는 건···."

티빙 오리지널 '좋거나 나쁜 동재'(극본 황하정·김상원, 연출 박건호)는 인기작 '비밀의 숲' 스핀오프 드라마다. 주인공 '황시목'(조승우 분)의 주변 인물이었던 '서동재'를 전면에 세운 이 드라마는 본편의 골조를 가지고 본편과 전혀 다른 질감을 표현해냈다. 경쾌하고 유쾌하게 허를 찌르는 '좋거나 나쁜 동재'는 마치 '서동재'처럼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좋거나 나쁜 동재'의 주인공 '서동재'는 예측 불가한 인물이다. 우아하고 경박한 자신만의 보법을 만들고 나아가 고유한 리듬까지 빚어낸다. 한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볼품없는 남자 주인공이지만 그의 궤적은 비상하다.

'서동재'라는 인물이 흥미로운 건 모든 클리셰를 깨부수기 때문이다. 그는 '악인'도 '정의로운 인물'도 아니다. 오직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다. 여타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과오를 되돌리려 하거나 정의로운 인물로 거듭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저 생존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해나간다. 그래서 가끔 악랄하고 그렇게 가끔 정의로운 인물.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열등감을 감기처럼 앓으며 목적을 위해서라면 추잡한 일도 서슴지 않는다. 생존에 대한 강한 집념은 드라마 안팎으로 새로운 파장을 일으켰고 캐릭터 스스로 자생력을 가지게 됐다. 여느 작품, 캐릭터와 다른 흥미로운 지점이다.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 스틸컷 [사진=티빙]

앞서 언급한 대로 '서동재'는 팬들의 강력한 요청으로 살아남은 캐릭터다. 한여진(배두나 분)과 영은수(신혜선 분)를 물리적으로 몰아세우고 '비리 검사'라고 불리지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그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도리어 측은지심을 느꼈다. 이는 배우 이준혁의 공이 컸다. 그는 탁월한 완급 조절로 인물의 농담(濃淡)을 표현했고, 비호감으로 느껴질 수 있었던 면면들을 희석시켰다. 이준혁과 서동재는 환상적인 시너지를 내며 팬덤을 구축했다. 팬들은 '서동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고 그 관심은 2차 창작물로 이어졌다. '서동재'는 그렇게 스핀오프 드라마의 주인공 자리까지 꿰차게 됐다.

박건호 감독은 "서동재는 '성장' '변화'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경계선에 서 있다. 옳은 길로 갈지 비리 검사로 향할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라고 설명했던 바 있다. 박 감독의 말대로 '서동재'는 어느 방향을 향할지 알 수 없다. 그는 오직 자신을 위해 선택하고 그 힘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다. 어디로 반응을 보일지 어디로 향할지 감히 짐작할 수도 없다. "무너지는 하늘에도 솟아날 구멍을 만드는 인물"이라는 이수연 작가의 소개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서동재'와 '이준혁'의 궤적이다. '서동재'의 분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이준혁'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성격이나 성향에 있어 도무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들이나 '목표'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분명한 공통점을 가진다. 자신의 직업에 애정을 가지고 목표한 바를 위해 자신을 내던지며 치열하게 분투하고 어떻게든 해법을 찾아내고야 마는 방식. 이준혁이 배우로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다져나가는 모습과 같았다.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 스틸컷 [사진=티빙]

이준혁은 2007년 단막극 '사랑이 우리를 움직이는 방식'을 시작으로 SBS '조강지처 클럽', KBS '수상한 삼형제', SBS '시티홀'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2012년 KBS '적도의 남자'로 악역에 도전하고 2014년 로맨스 '내 생애 봄날'로 이미지 전환에 나섰으며, 2015년 '파랑새의 집' 2016년 '유부녀의 탄생'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꾸준한 작품 활동에도 만족하지는 못했다. 그는 작품 활동과 연기에 목말랐고 불투명한 미래에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준혁은 무너지기보다 '솟아날 구멍'을 찾는 데 매진했다. 상업 영화부터 독립 영화까지 조단역 가리지 않고 작품에 뛰어들었고 연기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데 집중했다. 2017년 드라마 '비밀의 숲'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로 기회를 잡은 그는 기세를 몰아 영화 '범죄도시3' 디즈니+ '비질란테'까지 연달아 흥행시키며 입지를 다졌다. 

이준혁은 차근차근 '바깥'에서 '중심'으로 이동해왔다. '서동재'처럼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고 분투해 온 결과다. 그는 더디고 고달팠을지언정 자신이 목표한 바대로 분명히 발걸음을 옮겼다. 매 작품 매 캐릭터에 애정을 쏟아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어느새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배우'가 되었다.
 
티빙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 스틸컷 [사진=티빙]

드라마 '좋거나 나쁜 동재'는 막을 내렸지만, 이준혁과 서동재는 다시 출발선에 섰다. 이준혁은 영화 '소방관', 드라마 '인사하는 사이'로 하반기 대중과 만나고, 장항준 감독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합류하며 바쁜 일정을 보낼 예정이다. '서동재'에 대한 관심도 좀체 식지 않는다. 시청자들은 열렬한 러브콜로 서동재를 '주인공' 자리에 앉히더니 이번에는 '시즌제'를 내놓으라며 성화다. 정말이지 "오늘을 위한 거였다. 이런 날이 있으라고" 그리 분투한 모양이다. 한국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쓰고 스핀오프 드라마의 새 활로를 연 이준혁과 서동재의 내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