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리스' 경제팀
2024-11-04 06:00
"이 정부 들어서면 이렇게 하고, 저 정부 들어서면 또 반대로 하고···"
정부 경제부처를 출입할 때다. 공무원으로 평생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뭐냐는 질문에 한 고위 공무원은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경제부처 정책 담당자로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반대의 정책을 내밀고, 이를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을 상대할 때가 가장 괴로웠다는 얘기다.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는 정책을 짜고 또 이를 홍보할 때마다 자신은 영혼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져 소위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왔지만, 이 공무원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래도 국민이 선출한 정부(권력)' 명령에 따르는 것이 공복(공무원)의 사명이라는 더 깊은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속 편하게 산다고들 하지만 '공무원으로 한평생 사는 것도 쉽지 않겠구나'라는 것을 느꼈던 개인적 일화다.
최근 진행된 국정감사를 보면서 과거 연을 맺었던 이 공무원과의 대화가 불현듯 떠올랐다. 국회의원들의 날카로운 추궁에 몇 명 공무원들의 영혼 없는 대답이 나왔기 때문이다. 다만 그 영혼 없는 답변에 과거처럼 이해나 공감만을 하기는 어려웠다. 이해는커녕 허탈감을 느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대표적인 게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말을 바꾼 행태다. 정부는 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29조6000억원 덜 걷힐 것으로 보이자, 정부가 보유한 각종 기금을 우선 끌어다 쓰기로 했다. 환율 급등락 시기 외환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마련된 '외평기금'에서 4~6조원, 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 등에 쓸 '주택도시기금'에서도 최대 3조원을 동원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세수 펑크를 막기 위해 국가 비상금을 허물겠다는 것이다.
비상 상황이라면야 비상금을 우선 끌어다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세수 결손분을 메우기 위해 외평기금 등을 활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세수 부족 자체도 정부가 국가 경제 상황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명백한 '실책'인데, 불과 한 달 만에 정부 경제팀 수장의 발언이 손쉽게 뒤집힌 것이다. 한 달 후 일어날 상황을 제대로 예측지 못한 또 다른 '실수' 이거나, 고위 공무원으로서 너무 손쉽게 말을 뱉은 '영혼 없는' 행태다.
이번 정부 경제팀의 '영혼 없음'을 느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해지자 은행들을 찍어 눌러 대출 관리를 엄격히 하면서도, 반대편에선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각종 정책 대출을 쉴 새 없이 내준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독감에 걸린 아이 열을 내리기 위해 얼음찜질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너무 추워지면 안 된다며 두꺼운 이불을 덮은 것과 똑같은 이치다. 1년간 이어진 얼음찜질 처방에도 아이 열이 내리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가계부채 문제가 좀처럼 해결되지 않자, 경제팀은 또다시 은행들의 대출관리가 허술했다며 더 엄격한 관리를 예고하고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엇박자 정책을 1년간 이어오고 있는 경제팀의 또 다른 형태의 '영혼 없음'이다.
자신의 신념을 접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의 명에 따르는 것은 공무원의 사명이다. 정권 교체로 공무원들의 입장이 바뀐다고 해서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공무원이라면 한 정권 내에서 일관된 목소리, 일관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동일 정권 내에서 이랬다 저랬다 말을 뒤집고, 이도 저도 아닌 정책을 내놓는 변심을 국민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만일 이번 정부가 경제에 대해 잘 몰라서 입장이 이리저리 바뀌는 것이라 해도 상황은 똑같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지만 국민의 삶과 밀접한 경제 문제에 있어 이리저리 입장을 바꾼다면 경제 전문가인 경제팀이 직언을 해야 한다. 이번 정부가 '이랬다저랬다' 하니, 공무원인 나도 그 명을 받아 '이랬다저랬다' 하겠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 이래저래 이번 정부팀의 '소울리스'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