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兆 머니무브] 퇴직연금 실물이전 초읽기…은행 아성 깨질까

2024-10-30 04:53
31일 본격 시행 앞두고 은행권 긴장…전체 업권 중 점유율 52.6%
계약이전 쉬워 경쟁 치열해질 듯…일각선 "과거와 비슷할 것" 전망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퇴직연금을 다른 금융사로 쉽게 옮길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시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서비스 시작일인 31일부터 중도에 해지하거나 되파는 과정 없이 손쉽게 계약을 다른 금융사로 이전할 수 있다.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약 400조원에 달하는 만큼 자금의 대규모 이동이 예상된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퇴직연금 실물이전 시행을 눈앞에 둔 은행권이 내심 긴장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퇴직연금 시장 내 점유율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400조793억원 규모의 퇴직연금 적립액 중 52.6%에 해당하는 210조2811억원이 은행 적립분이다. 이 밖에 증권사와 보험사가 각각 96조5328억원, 93조2654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는 은행과 증권사 간 경쟁 양상으로 흘러갈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 퇴직연금 중 자사 보험상품을 탑재할 수 있는 보험형 자산관리계약은 실물이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장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은 점유율을 지키고, 증권사는 이를 공략하는 구도가 예상된다.

그러다 보니 은행과 증권사들은 자사의 높은 수익률을 강조하는 데 더해 이벤트 등 다각적인 수단을 활용해 퇴직연금 가입자 붙잡기에 나섰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은 자사 광고 모델인 안유진과 아이유를 각각 내세워 새로운 광고를 내보냈고, KB국민은행은 퇴직연금 전용 고객센터를 구축해 자산관리상담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섰다. 신한은행도 퇴직연금 전문상담직원이 배치된 연금라운지를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은행·증권사들은 실물이전을 예약하거나 상담을 신청한 고객에게 각종 상품권·쿠폰을 제공하겠다며 앞다퉈 모객에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은 추첨을 통해 이동식 스마트 TV, 커피머신, 종아리 마사지기 등을 주겠다며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경쟁이 과열되자 은행권에서는 퇴직연금 계약이 증권사로 대거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아무래도 은행들이 과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어 증권사에 쫓기는 국면인 것은 사실”이라며 “수익률 외에도 예·적금, 대출 등 은행이 보유한 다양한 서비스를 활용해 주거래은행 혜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 시행 이후 자금 이동 규모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소비자들이 퇴직연금 실물이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운용기관을 변경할 유인이 금융당국이나 금융권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물이전을 통해 자산 이동이 더욱 편리해지긴 했지만 과거에도 퇴직연금 계약이전이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실물이전 시행 이후에도 머니무브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