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참사, 책임자 어디로] 2년 전엔 책임진다더니…윗선 줄줄이 무죄, 이유는?
2024-10-28 15:51
159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태원참사 발생 2년여 만에 책임자로 지목된 관계자들에 대한 1심 재판이 일단락됐다. 현장 경찰에게만 유죄가 인정되고 용산구청과 경찰 지휘부 등 윗선은 줄줄이 무죄를 받으면서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최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희영 용산구청장과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 등 이태원 참사 당시 '윗선'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현장 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서울 용산경찰서장은 유죄가 인정돼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기소된 송병주 전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장은 금고형 2년을, 박모 전 용산서 112치안종합상황실 팀장은 금고형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일선 현장 경찰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결과가 나오자 "주요 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위원장은 "'문제는 있어 보이는데 죄는 없다'는 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따졌다. 또 다른 유가족은 "법원의 소극적 법 해석으로 참사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지연됐다"고 토로했다.
현장 경찰과 용산구청 관계자 등이 대조적인 판결을 받게 된 핵심 쟁점은 주의의무위반과 인과관계, 예견가능성이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는 안전사고 가능성을 예견하고도 주의의무 등 조치를 하지 않아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때 인정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 및 예견가능성 측면에서도 이임재 전 서장 등에 대한 업무상과실은 이태원참사의 직접 원인이 됐고 인관관계도 인정됐지만 용산구청은 구체적·직접적 과실이 없다고 봤다. 또 구청은 사고관련성이 없거나 사고예견이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설명이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에 대해 "입법불비와 법원의 소극적 판단이 합쳐진 결과"라며 현재 법령상으로는 현장 경찰 '독박 책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천주현 형사전문 변호사는 "(구청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으려면) 재난안전법에 구청이 안전대책을 세울 의무, 그것이 구청의 권한범위에 속한다는 점 등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를 명백히 넣어야 한다"며 "압사사고 신고가 구청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 경찰과 소방이 위험징후를 알리지 않았다는 점 등이 구청장 무죄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데 구청이 소방 및 경찰을 보조하는 지위, 사고수습 행정조치 실시 지위에만 머무르게 한 것은 입법불비"라고 지적했다.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항소심 법원의 적극적 법령 해석과 검찰의 추가 증거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밝혔다. 천 변호사는 "항소심에서는 목전의 급박한 행정상 장해의 제거 필요성을 따져 구청장이 행정상 즉시강제 처분을 내릴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새로 따져 검토돼야 한다"며 "김광호 전 청장은 예견가능성에 대한 불입증(증거불충분)이 무죄 판단 근거였다는 점에서 박희영 구청장과 다르다. 재판부는 (김 전 청장이) 보고 수신 즉시 부대 급파를 지시한 것을 유리하게 해석했는데 (항소심에서) 검찰이 추가 증거를 제시한다면 뒤집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