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3년 치 보도자료 일체'
2024-10-29 06:00
“보도자료 3년 치를 제출하라고 해서 하나하나 다 다운받아 인쇄까지 한 종이 자료가 수백 장은 족히 넘을 거예요. 보도자료만 보내는 게 아니고 보도자료에서 봐야 할 것, 주요 내용도 정리해서 보냅니다. 이 자료를 의원들이 다 볼지 의문이에요.”
오는 11월 행정감사를 앞두고 한 서울시 공무원은 서울시의회 의원실에서 ‘3년 치 보도자료 일체’라는 간단한 내용의 자료 제출 요구를 받았다고 했다. 서울시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확인할 수 있는 보도자료를 일일이 종이로 출력해 제출하라는 의미다.
또 다른 서울시 공무원은 몇 년 치 보도자료뿐만 아니라 해당 보도자료가 실제 보도로 이어졌는지 기사까지 첨부하라는 한 의원실의 요구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터넷만 검색해도 나오는 자료들을 정리해 제출하기 위해 밤을 꼴딱 새우는 공무원도 적지 않다고 했다.
매년 행정감사 기간이 돌아오면 자료 제출로 인해 지방의회 의원들과 지방 공무원들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여러 지방공무원 노조는 그간 3~5년 치 자료는 기본이고, 부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무리한 자료 요구로 업무 마비를 겪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 자료의 목적과 범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어 방대하거나 어떤 의도인지 파악할 수 없는 것도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의원들은 정당한 직무수행이라며 팽팽하게 맞선다.
그런데 과연 누구나 시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가능한 보도자료 3년 치 자료 요구도 정당한 직무수행으로 봐야 할지 의문이 든다. 일하는 티를 내려는 일부 의원들의 ‘잔심부름’ 요구에 행정력만 낭비되는 상황이다.
과거 서울시의회가 지방의회 최초로 전자회의 단말기를 도입했다는 기사가 떠오른다. 종이 문서를 없애 자원 절약을 할 뿐만 아니라 서류 등을 준비하느라 다른 일을 못하는 시 집행부의 효율적인 의회 참여를 위한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3000만원가량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단다. 그럼 행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원칙이 동일하게 적용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