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 기자의 C] "버려진 스마트폰이 '희망의 빛'으로…기술과 디자인의 접목"

2024-10-28 00:00
서울디자인어워드 2024
대상 랩에스디 '아이라이크 플랫폼'
구형 스마트폰을 안구검사기로
아프리카 어린이에 조명등 보급
'유니버설 디자인' 통해 가치 높여


실명을 예방하는 이동식 안구 검사 기기, 아이라이크 플랫폼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인류 최초 디자이너는 누굴까? 언젠가 넓은 의미에서 초기 인류를 디자이너로 볼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수십만년 혹은 수백만년 전의 돌도끼나 동굴벽화를 디자인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생존과 삶의 질 향상, 의사소통 등을 위해서 돌이나 나무 등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 새 해결책을 찾는 인류의 타고난 능력이 디자인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탈리아의 국민 디자이너 에지오 만지니 DESIS 창립자 및 회장은 지난 26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서울디자인어워드 2024’에서 “문제가 있다면, 내가 지닌 자원을 갖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에지오 회장은 “디자인은 선물과도 같은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비판적인 사고와 상상력, 실천 가능성, 이런 것들이 결합해 인간은 디자인하는 것”이라며 “우리(디자이너)는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능력을 지녔지만, 이와 관련된 방법론을 알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올해 서울디자인어워드에서는 이 같은 디자인의 힘을 볼 수 있었다. 파이널에 오른 10개 프로젝트 모두는 인류를 위한 선물이었다. 디자이너들은 자원과 창의성을 최대로 활용해 세계 곳곳의 일상의 문제를 푸는 데 기여했다.
버려진 스마트폰이 희망으로 
아이라이크 플랫폼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서울 디자인어워드 2024에서는 65개국에서 출품된 575개의 혁신적인 프로젝트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그 결과 랩에스디의 ‘아이라이크 플랫폼(EYELIKE PLATFORM)’이 대상을 받았다. 아이라이크 플랫폼은 사용하지 않는 구형 스마트폰을 이동식 안구 검사 기기로 재탄생시켜, 세계 각지에서 실명을 예방하는 데 기여한 프로젝트다.

일부 개발도상국에서는 실명이 심각한 문제다. 의료 전문가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프라도 열악한 탓에, 안질환을 조기에 치료하지 못해 시력을 잃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전 세계 시각 장애인 약 2억5300만명 가운데 89%가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적인 검안기는 흔히 안과에서 볼 수 있듯, 턱과 이마를 고정한 상태로 눈의 상태를 검사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라이크는 스마트폰을 업사이클링해 검안기로 만든 만큼, 누구든지 한 손으로 들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휴대도 쉬워 ‘찾아가는 안과’가 될 수 있는 셈이다. 

또한 아이라이크 플랫폼은 AI 진단시스템 등도 함께 제공해 검진의 속도와 정확성도 높였다. 현재까지 5개국에서 3000대가량의 휴대전화가 검안기로 업사이클링 됐고, 이를 통해 3만7000여 명의 환자가 검사를 받았다.
 
김윤승 랩에스디 대표는 시상식에서 “이번 디자인어워드에는 관통하는 주제가 있는 것 같다”며 “그 주제란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디자인의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셜벤처들이 요새 많이 힘든 상황”이라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든 이들이 이 시기를 살아내고, 해결하려고 하는 일들을 해결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베스트 오브 베스트상을 수상한 ‘솔라카우 & 아얀투’는 아프리카 농촌 지역에 조명등을 보급해 아이들의 등교를 유도했다. 학교에는 태양광 충전 시스템인 ‘솔라카우’를, 아이들에는 휴대용 배터리 겸 조명등인 '솔라밀크'를 나눠줘, 아이들이 솔라밀크를 충전하기 위해 학교로 오도록 한 것이다. 아이들을 일터로 보냈던 부모들도 귀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아이들을 일터가 아닌 학교로 보냈다. 
 
솔라카우&아얀투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솔라카우&아얀투 [사진=서울디자인재단]
 
시각 장애인의 일상 문턱 낮춘다…기술과 만난 디자인
서울디자인어워드 2024가 2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다. [사진=윤주혜 기자] 

콘퍼런스에서는 기술과 디자인을 통해서 시각 장애인의 일상 문턱을 크게 낮춘 사례들도 소개됐다.

이 중 하나는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주는 소셜벤처 투아트와 SK텔레콤의 설리번 플러스다. 설리번 플러스는 AI를 기반으로 시각을 보조해 주는 음성안내 앱이다.

예컨대 설리번 플러스를 스마트폰에 내려받고 메뉴판 등을 촬영하면, 앱이 글자를 읽어준다. 촬영된 사진에 있는 문자를 음성으로 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촬영된 사람의 나이, 성별, 표정 등도 AI가 분석해 준다. “문자 읽어줘”라고 말하면 AI가 문자도 읽어준다.
 
조수원 투아트 대표는 이날 “초기 AI로만 접근했던 서비스는 실패작이었지만, 이후 시각 장애인들의 피드백을 통해 개선을 거듭한 끝에 제대로 된 서비스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다만, 조 대표는 “기술이 앞서가고 있으나,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술을 접목하고자 하는 노력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며 “사회적으로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이 높아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춘수 SK텔레콤 디지털접근성 팀장은 “챗GPT가 촉발한 AI 서비스를 통해 시각 장애인들이 효용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각장애인의 세탁기 사용도 한층 수월해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AI는 단적인 사례다. 이보나 삼성전자 DA사업부 CX 인사이트그룹 상무는 “원래 세탁기는 작은 글씨를 찾아서 돌려가면서 설정해야 하나, (AI 세탁기는) 큰 글씨 모드 등을 제공해서 시력이 좋지 않은 이들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AI 음성 비서 기능도 탑재돼 말로 지시하면 실행하고, 모르는 걸 물어보면 답해준다"며 "말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상무는 “제품 자체에도 AI 기술이 들어가, 어떤 옷감을 넣었는지 등을 세팅하지 않아도 세탁기가 알아서 판단해서 세제를 넣는다”며 “시각장애인들은 세탁기에 정량의 세제를 넣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이 세탁기는 세제를 한번 넣으면 2~3개월간 지속되기 때문에 이러한 부담도 덜었다”고 강조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독립성을 누릴 수 있도록 기술과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병수 미셔잇 대표는 “자녀를 키우는 시각장애인 부부는 분유를 타거나 아이를 가르칠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답답해한다”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독립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기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술과 접목한 유니버설 디자인을 통해 선택권을 제공하고, 자유의지를 실현하도록 독립성을 줘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