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비자금 메모'와 억울한 누명
2024-10-21 08:41
우리는 심심치 않게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사례를 접하고는 한다. ‘누명’의 사전적 정의가 ‘사실이 아닌 일로 이름을 더럽히는 억울한 평판’임을 고려하면, 억울한 누명이라는 표현은 ‘역전 앞’과 같은 군더더기 표현이다. 하지만 누명을 쓴 사람 입장에서 그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억울한 누명’이라는 표현은 과하지 않다.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대개 시간이 많이 지난 후이고, 역설적으로 누명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밝혀진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렸던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다. 강기훈씨는 지난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대학생 중 한 명이었던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3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강씨는 만기 출소 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15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누명을 벗는 데 무려 24년이 걸렸으니, 그간 강씨가 겪은 고충과 피해를 생각하면 ‘억울한 누명’이라는 표현이 옳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제반 시스템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와 같이 누명을 쓰는 사례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례는 존재하고 있고, 현재 진행형인 사례도 많다.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가짜 뉴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플랫폼의 발전으로 그 파급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는 대상도 정치인·연예인 등 유명인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인과 일반 시민으로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시 세상에 나온 '노태우 비자금' 사건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나온 김옥숙 여사의 메모였다. 지난 2013년 추징금 완납 이후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자금이 십수년 만에 부활했다. 지난 5월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판결에서 비자금 메모를 증거로 인정했다.
그 돈의 조성 경위나 불법성 여부 등은 따지지 않은 채 '선경 300억원, 최 서방 32억원' 등이 적힌 메모를 근거로 최 회장의 대한텔레콤 주식 매수 자금에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아버지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이라는 최 회장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 돈을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했고, 결국 노 관장은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종잣돈 삼아 수조원대의 재산가가 된 셈이다.
더구나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 최종현 선대회장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면서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했다. 세간의 비자금 제공설, 각종 특혜설을 모두 인정했다. 권력과 기업의 검은 뒷거래를 법의 테두리 내로 끌고 온 것이다. 법이 불법 자금의 상속까지 인정하는 게 과연 옳은지 논쟁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자금 의혹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법사위는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고, 기재위는 노 전 대통령이 사실상 비자금을 증여했다면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높였다.
김 여사의 메모대로 추가 비자금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정치권의 주장대로 이번 기회를 통해 단순히 과세뿐만 아니라 전체 규모 및 조성 내역 등을 밝혀내야 한다. 특히 이 메모로 인해 누명을 쓴 사람이 있다면, 그 억울함을 하루빨리 명명백백 규명해야 할 것이다.
‘답정너'(정해진 답으로 대답만 해) 결론이 아니라면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고법의 판결로 수십년 한국 현대사를 짓밟아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음은 물론, 그 과정에서 누명을 벗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우리의 노력으로 발전시켜 온 ‘사회 자정 작용’의 힘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이 밝혀지는 것은 대개 시간이 많이 지난 후이고, 역설적으로 누명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밝혀진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렸던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이다. 강기훈씨는 지난 1991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한 대학생 중 한 명이었던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3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강씨는 만기 출소 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등의 도움을 받아 지난 2015년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았다. 누명을 벗는 데 무려 24년이 걸렸으니, 그간 강씨가 겪은 고충과 피해를 생각하면 ‘억울한 누명’이라는 표현이 옳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제반 시스템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와 같이 누명을 쓰는 사례는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례는 존재하고 있고, 현재 진행형인 사례도 많다. 특히 최근에는 유튜브 등을 중심으로 가짜 뉴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플랫폼의 발전으로 그 파급력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이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쓰는 대상도 정치인·연예인 등 유명인에 국한되지 않고, 기업인과 일반 시민으로까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다시 세상에 나온 '노태우 비자금' 사건도 마찬가지다. 시작은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 소송을 통해 세상에 다시 나온 김옥숙 여사의 메모였다. 지난 2013년 추징금 완납 이후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비자금이 십수년 만에 부활했다. 지난 5월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 판결에서 비자금 메모를 증거로 인정했다.
그 돈의 조성 경위나 불법성 여부 등은 따지지 않은 채 '선경 300억원, 최 서방 32억원' 등이 적힌 메모를 근거로 최 회장의 대한텔레콤 주식 매수 자금에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아버지 최종현 선대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이라는 최 회장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 돈을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했고, 결국 노 관장은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종잣돈 삼아 수조원대의 재산가가 된 셈이다.
더구나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 최종현 선대회장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면서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했다. 세간의 비자금 제공설, 각종 특혜설을 모두 인정했다. 권력과 기업의 검은 뒷거래를 법의 테두리 내로 끌고 온 것이다. 법이 불법 자금의 상속까지 인정하는 게 과연 옳은지 논쟁이 나오는 이유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자금 의혹의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법사위는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고, 기재위는 노 전 대통령이 사실상 비자금을 증여했다면 증여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목소리가 높였다.
김 여사의 메모대로 추가 비자금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정치권의 주장대로 이번 기회를 통해 단순히 과세뿐만 아니라 전체 규모 및 조성 내역 등을 밝혀내야 한다. 특히 이 메모로 인해 누명을 쓴 사람이 있다면, 그 억울함을 하루빨리 명명백백 규명해야 할 것이다.
‘답정너'(정해진 답으로 대답만 해) 결론이 아니라면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을 받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고법의 판결로 수십년 한국 현대사를 짓밟아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음은 물론, 그 과정에서 누명을 벗을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오랜 시간 우리의 노력으로 발전시켜 온 ‘사회 자정 작용’의 힘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