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5대 궁궐 트레킹] "궁에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었어요"

2024-10-19 18:29

“엄마, 창덕궁 인정전에 박석이라는 돌이 있는데, 박석이 풀이랑 빛을 골고루 분산시켜서 멀리서도 왕 목소리가 들릴 수 있게 해준대요.”(맹치현·10)
 
19일 오후 창경궁에서 아들 맹치현군과 함께 아주경제신문이 주최한 '2024 청와대·서울 5대 궁궐 트레킹’에 참가한 박양주씨(42)를 만났다. 박씨는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을 둘러봤고, 이제 덕수궁으로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아들이 창덕궁에 관련된 과학 숙제를 한 적이 있다”며 “같이 돌아보면서 아들이 (궁에 대해) 설명해 줬다”고 말했다.
 
19일 아주경제신문에서 주최한 '청와대 5대 궁궐 트레킹' 행사 참가자들이 창경궁의 춘당지로 향하고 있다.[사진=한승구 수습기자]

궁궐 트레킹은 의정부지 역사유적광장을 시작으로 경복궁, 청와대,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까지 자유롭게 이동하며 지정된 장소에서 도장을 받아 완주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참가자들은 행사 기념품으로 받은 분홍색 모자를 쓰고 각자의 트레킹 코스를 즐겼다.
 
그 덕에 길에서 우연히 만난 두 여성은 새로운 인연을 맺었다. 충청남도 홍성에서 온 최연숙씨(63)는 옆에 있던 이소정씨(64)를 소개하며 “제가 길을 잘 모르니까 분홍 모자랑 분홍 배낭만 따라다니다가 우연히 만났어요”라며 “색깔이 확 튀니까 길을 잃어버릴 걱정도 없고 너무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씨는 “내년에도 하면 또 참가할 것 같다”며 “계절을 바꿔서 봄 벚꽃 시즌에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에 사는 이씨는 “혼자 트레킹을 신청했는데 같이 대화할 상대가 생겨 기쁘다”며 미소 지었다.
 
궁궐 안 땅은 어제 잔뜩 내린 비로 흙길 중간중간 웅덩이가 패어 있었다. 가을볕은 피부가 탈 듯 뜨거웠지만, 살랑 바람이 불어 참가자들은 걷는 동안 땀을 식힐 수 있었다. 궁궐 설명이 적힌 비석을 꼼꼼히 읽는 사람, 풍경을 찍는 사람 등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궁궐을 즐겼다.
 
창덕궁에서 딸과 같이 왔다는 장종남씨(57)는 “전각과 후원을 보러 왔어요. 가을이잖아요”라며 “경복궁보다 창덕궁이 예쁜 것 같다”고 말했다. 창덕궁은 다른 궁궐에 비해 인위적인 구조를 따르지 않고 주변 지형과 어울리도록 자연스럽게 건축했다. 그래서 가장 한국적인 궁궐로 꼽히는데, 이날 행사를 찾은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꼭 가고 싶은 궁으로 지목됐다. 특히 창덕궁 후원은 다양한 연못, 정자, 수목 등이 조화를 이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19일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에 학생처럼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할머니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이다희 수습기자]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에선 학생처럼 배낭을 메고, 운동화를 신은 할머니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들을 인솔한 박지원씨(30)는 “신당야학에서 왔다”며 할머니들의 나이가 모두 70세 이상이라고 말했다. 또 “어르신들이 궁궐을 보는 게 처음이라 무척 설레어하세요”라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허리를 펴는 것도, 걸음을 옮기는 것도 조심스러워 보였지만 주위를 둘러보고 궁궐을 찍는 데 여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