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캐스팅보트' 쥔 국민연금...5년간 최윤범 회장 손 들어줘

2024-10-16 08:32
최근 5년간 의결권행사 집계 결과 대부분 최 회장 손 들어줘
2년 전 영풍 측 장형진 이사선임엔 '반대'

고려아연이 이사회를 연 지난 10월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확실한 승자 없이 장기전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지분 7.8%를 보유한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경영권 다툼의 결과가 결정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국민연금은 2년 전 고려아연 주주총회에서 장형진 영풍 고문을 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확인돼 이번 경영권 분쟁과 추후 주총 표 대결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16일 고려아연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 2020년 3월부터 올해 3월까지 최근 5년간 고려아연 정기 주총에 참석해 총 53건의 의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92.5%(49건)가 '찬성'으로, 고려아연 경영진 방침에 대부분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의안은 4건이다. 이 가운데 3건은 이사 선임 안건이었고, 나머지 1건은 이사 보수한도액 승인 안건이었다.

국민연금이 반대한 의안 중에는 현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는 장형진 영풍 고문에 대한 이사 선임안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2022년 3월 23일 열린 정기 주총에는 '장형진 기타 비상무이사 선임의 건' 등 총 8건의 안건이 올라왔다. 이때 국민연금은 다른 의안에는 모두 찬성했으나, 장 고문의 이사 선임에는 '반대'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반대 사유로 "장형진 후보는 과도한 겸임으로 충실의무 수행이 어려운 자에 해당해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는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내부 기준에 따른 결정이었다.

이와 관련해 고려아연 관계자는 "장 고문이 사내·외에서 여러 직책을 맡고 있어 이사 업무를 충실하게 하지 못할 것으로 내부적으로 판단해 반대한 것으로 안다"며 "다만 장 고문에 대한 이사 선임안은 동업 관계를 고려한 나머지 주주들의 지지를 받아 과반 찬성으로 통과됐다"고 말했다.

장 고문은 현재도 고려아연 기타 비상무이사로 재직 중이다. 국민연금은 장 고문 측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경영권 분쟁을 수면 위로 드러낸 올해 3월 주총에서도 고려아연 경영진 편에 섰다.

지난 3월 주총에서 양측은 2건의 안건을 놓고 표 대결을 벌였는데, 2건 모두 국민연금은 '찬성'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당시 장 고문 측은 고려아연의 배당 관련 안건에 대해 '배당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반대했다.

또 신주 발행 대상을 외국 합작법인으로 제한한 규정을 삭제하자는 경영진에 맞서 신주 발행으로 기존 주주 지분 가치가 희석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했다. 이 같은 경영 판단에서 국민연금은 모두 최 회장 등 경영진의 손을 들어줬다.

앞으로 영풍·MBK 연합과 고려아연 최 회장 측이 벌이는 경영권 분쟁에서 국민연금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공개매수전에서 국민연금이 운용사에 맡긴 고려아연 주식 일부를 매각했을 수 있지만, 공개매수전 이후에도 상당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이 오는 23일까지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전체 주식의 10%를 사들여 소각하는 경우 전체 주식 모수가 2070만3283주에서 1863만2955주로 줄어들면서 영풍·MBK 연합의 지분은 42.74%, 최 회장 측은 베인캐피털 우호 지분까지 합해 40.27%로 각각 높아진다.

이 경우 국민연금 지분은 현재 7.83%가 유지되는 경우 8.7%까지 커진다. 40% 초반대 지분을 보유하고 표 대결을 벌여야 하는 양측 사이에서 국민연금의 지분 8.7%는 절대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